[베를린 영화제] '리타의 전설' 감독 독일의 슐뢴도르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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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양철북' 으로 '79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폴커 슐뢴도르프 감독(61)은 60년대 말과 70년대에 걸쳐 독일 영화에 새 활기를 불어넣은 인물이다.

알랭 르네, 루이 말 같은 유명감독 밑에서 연출을 배운 그는 '문학의 영화화' 의 대가.

사회 비평적인 소재를 즐겨 다뤄 자주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그가 올해 베를린 영화제에서 선보인 '리타의 전설' 역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영화는 리타 보거트라는 적군파 출신 여성이 동독에 포섭된 뒤 일반 시민으로 살아가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한 후 동.서 어느 쪽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죽음을 맞는다는 줄거리로 돼 있다.

문제는 실제 모델인 잉게 피에트라는 여성이 "동독 정보부와 관련된 이야기 말고는 나오는 인물 모두 사실과 다르다" 며 자신의 전기를 낸 출판사와 함께 소송을 하겠다고 발표했던 것.

슐뢴도르프 감독은 "피에트의 전기를 원본으로 삼긴 했지만 나는 역사적인 사실이 아니라 허구(픽션)를 고집했다. 나는 내 영화가 단순히 전기를 그대로 옮기는데 그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 고 해명했다.

- 그럼 왜 적군파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나.

"애초에 난 테러리즘에는 관심이 없었다. 혁명에 헌신하는 여성 그 자체가 초점이었다. 서독이라는 자본주의에서 성장한 여성이 무정부주의자가 되고, 그녀가 다시 무미건조하고 삭막한 동독이라는 곳에서 어떻게 좋은 기분으로 지낼 수 있었는지 그 대비적인 성격의 공존이 흥미로웠다. 혁명성과 낭만주의의 공존 같은 것 말이다. "

- 당신은 늘 비극적인 인물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나는 적군파 여성이 자유로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자유라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고나 할까. 왜냐하면 그녀는 늘 타인의 고통을 생각하고 타인을 구하는 데만 몰두 할 뿐 자신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마지막, 즉 죽음을 앞두고서야 자신을 발견했을 지 모르겠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을 꼭 죽여야했는가.

"만약 죽지 않았다면 그녀는 지금쯤 식탁에서 감자와 청어를 먹고 있을 것이다. 그건 현실과 일치하긴 하지만 그녀를 너무 왜소화하는 게 아닐까. 리타는 비극적인 종말을 맞을 자격이 있다.

우리는 그녀를 슬퍼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인간에 대해 슬퍼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예술의 기능이고 엘레지(悲歌)의 작용이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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