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살렸더니"… 피아노의 아우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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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익악기의 영창악기 인수가 끝내 무산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9일 피아노 시장에서 독과점 폐해가 우려된다며 삼익악기가 갖고 있는 영창악기 지분(48.6%)을 1년 내에 모두 처분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공정위의 결정에 대해 업계는 기업 현실을 무시한 탁상행정의 표본이라고 지적했다. 도산 위기에 빠진 기업을 인수해 경쟁력 있는 규모로 덩치를 키우는 것은 기업 인수.합병(M&A)의 기본 목적일 뿐 아니라 산업 구조조정의 자연스러운 과정인데, 공정위가 시장 점유율이란 숫자에 집착해 무리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악기업계에서는 또 M&A를 통한 국내 간판기업의 탄생을 막으면 야마하 등 외국의 대형 악기업체와의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걱정도 나오고 있다. 삼익악기는 공정위의 결정에 대해 소송 등 법적 대응에 나설 계획이다.

◆뭐가 문제인가=삼익악기가 영창악기를 인수하면 국내 가정용(업라이트) 피아노 시장의 점유율이 92%가 된다. 공정위는 경쟁기업이 없으니 삼익악기가 가격을 마음대로 올려 소비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영창악기의 잠재력이 크기 때문에 경쟁사인 삼익악기가 아니더라도 다른 국내 업체가 얼마든지 인수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삼익악기 김종섭 회장은 "기업 현실을 모르는 몰상식한 결정"이라며 "영창악기를 삼익이 아닌 다른 회사가 인수할 경우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삼익악기의 영창악기 인수는 영창 측이 먼저 제의한 것이다. 영창악기는 2002년 6월 3년여 만에 워크아웃을 졸업하긴 했으나 인원감축 과정에서 명예퇴직금 지급 부담이 늘어나면서 지난해 말 부채 비율이 600%를 넘어섰고, 3년째 적자를 기록했다. 여기에 노사 분규까지 겹치자 영창의 경영진이 삼익을 포함한 국내 3개 업체에 회사 인수 의사를 타진했다. M&A를 통해 회사를 살려보자는 것이었다.

◆악기산업에 찬 물=업계에선 공정위가 가뜩이나 부진한 국내 피아노 산업을 더 위축시켰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현재 피아노 업계는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다. 영창악기의 경우 올해 매출이 지난해의 60% 수준에 불과하다. 경기 침체로 새 피아노를 사려는 사람은 없고 시장에는 팔려고 내놓은 중고 피아노가 넘쳐나고 있다. 중고 피아노 판매가 전체 시장의 70%를 차지할 정도다. 피아노 업체가 설 땅이 좁아진 것이다.

여기다 외국 업체의 공세까지 겹쳤다. 업계는 현재 8%대인 외국산 피아노의 시장 점유율이 3년 내에 40%대로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해외시장 사정도 어렵다. 일본 시장은 야마하와 가와이가 90% 이상 점유하고 있다. 미국 시장은 미국 업체인 스타인웨이와 야마하가 20%씩 점유하고 있고 삼익과 영창은 각각 10%대다.

박혜민.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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