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 해상관제센터 24시 … 비틀비틀 ‘음주 배’도 잡아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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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부산항 해상교통관제센터에서 관제사들이 레이더 모니터를 보면서 선박을 안내하고 있다. 관제센터 밖으로 여객선이 보인다. [송봉근 기자]

“모든 입항선박들, 여기는 부산항 해상교통관제센터. 입항 번호 1번은 아메리카호입니다.”

17일 오후 3시 부산항이 한눈에 들어오는 부산시 영도구 동삼동 조도 정상에 자리 잡은 부산항 해상교통관제센터(VTS). VHF 채널 12에 맞춘 무전기 마이크를 든 김종철(52) 관제사가 능숙한 국제해사 영어로 부산항에서 9㎞ 떨어진 위치보고선(Report line)에 도착한 10여 척의 배에 입항 순서를 매겼다. 잠시 후 지시를 받은 컨테이너선박들이 10분 가격으로 한 척씩 부두를 향해 들어왔다.

하루 200여 척의 상선이 드나드는 부산항. 이곳에도 러시아워가 있다. 육지의 도로처럼 출퇴근 시간대에 몰리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생긴다.

김 관제사는 “컨테이너선박들은 1초라도 먼저 입항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며 “화물을 빨리 운반해야 하는 상선들에 시간은 바로 돈”이라고 설명했다. 배들은 위치보고선 도착 1시간 전에 도착예정시간(ETA)를 VTS에 보고한 뒤 전속력으로 달려온다. 선적과 하역작업을 하는 부두 접안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다. 관제센터 안은 하루 종일 무선을 주고받는 소리와 전자음으로 시끄럽다. 관제사 6명과 해경·부산항만공사 직원 각 1명이 한 조(8명)를 이뤄 3개 조가 주야 2교대로 근무한다. 여성관제사도 3명 있다.


김 관제사는 대형 컨테이너선들이 항로를 따라 지정한 부두에 접안할 때까지 레이더 영상이 나타나는 27인치 스크린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배들이 부산항 방파제 사이를 통과할 때는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이날 따라 조류가 셌다. 간격 560m의 방파제 사이를 통과하는 배들이 파도에 밀려 방파제와 충돌할 듯 위험한 상황이 벌어졌다.

김 관제사 옆에 있던 송호련(35·여) 관제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항무부산(‘부산항 VTS’의 호출신호), 조류가 셉니다. 모든 선박은 8노트 이상으로 안전하게 입항하십시오.” 배들이 일정 속도로 항해해야 파도에 옆으로 밀리지 않는다.

또 다른 위급한 상황도 종종 벌어진다. 관제를 따르지 않는 말썽꾸러기 배들 때문이다. 이날 새벽 1섹터(북항·용호만) 관제를 맡은 30년 경력의 박찬길(53) 관제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항내 준설공사 지점 표시를 해놓은 부이 사이로 들어가는 배가 나타났다.

“○○○호, 준설 공사용 부이를 좌현에 두고 나오라 안 했습니까. 부이 안으로 가면 위험합니다.” 놀란 ○○○호가 준설공사장을 빠져나올 때까지 박 관제사는 주변 선박들의 움직임을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선장이 귀항하는 기분에 들떠 술 한잔 걸치고 배를 모는 경우도 있다. 박 관제사는 “무전을 주고받다가 술 취한 목소리 같으면 배의 항적(航跡)을 살핀다”며 “일정 속도와 일직선으로 나가지 않고 갈팡질팡하면 해경에 통보해 경비정을 출동시켜 단속한다”고 설명했다.

대형 컨테이너선을 1시간여 만에 부두에 접안시킨 송호련(35·여) 관제사는 “컨테이너를 가득 실은 배를 안내하고 나면 수출입에 작은 기여를 했다는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요즈음 부산항을 오가는 배들은 하루 200여 척이지만 금융위기가 오기 전인 지난해 초에는 하루 300여 척이었다고 한다. 송 관제사는 “부산항 관제센터에서 느끼는 경기지수는 아직 회복 중”이라고 전했다.

관제사들은 승선 경력 3년 이상에 어학 실력을 갖춘 항해사를 대상으로 시험을 거쳐 선발된다. 최자윤(29·여) 관제사는 목포대 항해과를 2003년 졸업한 뒤 5만t급 자동차 운반선을 3년 탄 뒤 관제사 시험에 합격했다. 관제사는 초임 연봉 3000만원대의 9급 서기보에서 출발한다.

부산=김상진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해상교통관제센터(VTS)=항구를 오가는 배들을 안전하게 관제하기 위해 전국 주요 항구 15곳에 설치돼 있다. 승선 경력과 어학 실력으로 무장한 300여 명의 관제사가 근무 중이다. 첨단 레이더 장비로 선박들의 크고 작은 움직임까지 포착해 안전항해를 돕는다. 배들의 입출항 시간을 체크해 항만 이용료 징수 자료로도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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