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첫 뇌사 판정] '무반응' 30분…판정위원 전원 "뇌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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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5일 오전 10시30분 인천 길병원 본관 12층 소회의실. 새 장기이식법에 따라 구성된 이 병원 뇌사판정위원회(위원장 尹正哲.59.길병원 부원장)가 긴급 소집돼 위원 7명이 심각한 표정으로 모였다.

참석자는 위원장을 비롯, 심장내과.신경과.마취과.신경외과(2명) 의사 6명과 목사 1명. 이들은 뇌출혈로 소생가능성이 없는 朴모(38)씨에 대한 사상 첫 공식 뇌사판정을 위해 모였다.

위원들은 朴씨의 평탄뇌파 기록 등 진료기록을 30여분 동안 세밀하게 검토하며 열띤 토론을 벌인 끝에 만장일치로 뇌사결정을 내렸다.

평탄뇌파(무반응)가 30분 이상 진행되는 등 법이 정한 여섯가지 판정기준이 충족된 것. 법상 위원 3분의 2이상이 참석하고 참석자 전원이 찬성해야 한다.

尹위원장은 "대한의사협회가 제정한 뇌사판정 기준에 따라 참석위원 모두의 의견을 모아 뇌사판정을 내렸다" 고 밝혔다.

뇌사자 유족의 뜻에 따라 기증된 장기는 적출 72시간안에 세포 조건이 맞고 우선순위에서 앞서는 것으로 선정된 7명의 환자에게 이식된다.

당초 지난 14일 뇌사판정위원회가 열릴 예정이었으나 마지막 뇌파검사 결과 희미한 뇌파 흔적이 발견됨에 따라 하루 유보됐었다.

이날의 뇌사판정은 합법적으로 내려진 첫 결정이라는 의미 외에 인간의 사망을 구체적인 사안을 통해 법적으로 해석했다는 의의를 지니고 있다.

또 뇌사자의 장기기증이 합법적으로 이뤄짐으로써 지금까지 빚어졌던 뇌사자 장기기증의 불법성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일본의 경우 장기이식 관련 의학기술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법이 통과된 1999년 3월에야 처음으로 뇌사자 장기이식이 시행됐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법률안 제정이란 사회적 합의를 거치기도 전인 88년부터 성급하게 뇌사자 장기이식술이 시행돼 법조계의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의료계 일부에서는 '뇌사〓죽음' 은 성급하다는 지적도 있다. 뇌사는 장기기증을 전제로 인정되는 죽음일 뿐 가족들이 장기기증에 동의하지 않은 뇌사는 법률적인 죽음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낮은합동법률사무소 전현희 변호사는 "의학적으로 뇌사가 명백해도 장기기증과 무관하게 인공호흡기를 떼는 것은 법률적인 살인행위" 라고 규정했다.

대부분의 뇌사자가 인공호흡기를 장착해도 2주를 넘기기 힘들지만 이 기간 안에라도 인공호흡기를 임의로 제거할 순 없다는 것. 이번 경우도 먼저 가족의 장기기증 동의를 구한 뒤 뇌사판정 절차가 이뤄졌다.

인천〓엄태민 기자, 홍혜걸 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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