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경찰에게 수사권 맡겨야” 검찰 “경찰, 지금도 수사권 누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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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당시 국회는 현재의 국가정보원 기능까지 있는 경찰의 힘을 우려해 형소법에 ‘경찰의 수사권’을 명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방향이 옳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이후 법률 개정 없이 50여 년간 형소법은 “검사는 범죄의 혐의가 있을 경우 범죄 사실과 증거를 수사해야 한다(제195조)”고 못박아왔다.

검사만 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한 헌법도 논란 거리다. 서울대 조국 (법학) 교수는 ‘검사 수사지휘권 행사에 관한 연구’에서 “영장 청구권을 검사가 독점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 때인) 제5차 개헌 시기”라며 “유례를 찾기 힘들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회의장 직속 헌법연구자문위원회도 최근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안을 다수 의견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경찰은 ‘민주주의 원칙에 맞는 국제 기준’을 강조하고 있다. 경찰청 민갑룡 수사구조개혁팀장은 “대부분의 선진국이 범죄를 다스릴 때 수사(경찰)-기소(검찰)-재판(법원)의 주체를 분리하는 것은 한 기관에 힘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대법원 관계자는 "법률로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법원에서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김희철 의원의 개정안은 ‘수사의 주체는 경찰이 하고, 필요에 따라 검찰도 스스로 수사할 수 있으며, 검찰이 경찰의 교체임명권과 징계 요구권을 갖는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수사를 경찰에게 맡기되 검찰이 경찰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두자는 것이다.

인권 문제도 쟁점이다. 정치권과 경찰은 ‘조두순 사건’을 예로 들고 있다. 성폭행 피해자인 나영이(가명)가 경찰에서 조사를 받았음에도 검찰에서 수차례 반복된 진술 조사를 받아 2차 피해가 커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찰의 수사에 인권 침해적 요소가 있어 검찰의 통제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경찰은 ‘수사와 기소의 분리’를 주장하고 있지만 주요 범죄를 제외한 민생 치안 등에 대한 수사권을 부분적으로 가져오는 안에 대해서도 고려하고 있다.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교통 사고나 폭행 등 가벼운 민생 치안에 대해 경찰이 수사권을 행사하도록 개정하고 이를 통해 검증을 받은 뒤 수사권을 조정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검찰 개혁’을 주요 화두로 삼고 있다. 수사권 조정도 이런 맥락에서 논의됐다. 그러나 민주당 관계자는 “수사권 조정안이 국제적 흐름을 반영하고 있고 법 논리상으로도 옳다”며 ‘정치권의 싸움’으로 비춰지는 것을 경계했다.

민주당의 안에 한나라당이 얼마나 호응할지가 개정안 통과의 큰 변수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5대 강력 범죄 외의 범죄에 대해서는 경찰의 독자적 수사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지만, 국정 과제에 포함되지는 않았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세종시와 경제 회복 등 현안이 많아 본격적으로 논의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강인식·이정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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