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클로즈 업] "토론 없는 죽은 교실, 이젠 살려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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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은 미국 수준의 8분의 1에 불과합니다."

조슈아 박(한국명 박규일.25). 앞날이 보장된 미국 변호사의 길을 뿌리치고 고국의 고교 교단에 선, 이 기특한 청년의 발칙한 한국 교육 비판이다.

인성과 지성면으로 나눠 볼 때 학교 수업에 인성교육이 없으니 2분의 1, 지성교육은 교과서에만 의존하니 또 그 절반, 그나마 교과서도 단순 지식만 담고 있으니 결국 8분의 1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는 대원외국어고 해외진학반의 지도교사. 외국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토론.에세이 작성 수업을 진행한다. 한여름 찜통 교실에서 학생들과 부대끼며 밤 늦도록 '야자(야간 자율학습)'를 하고 입시를 앞두고는 라면을 끓여 먹으며 대학을 골라주고 추천서를 쓰는 모습은 여느 교사들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그는 우리 교육에 할 말이 많은 듯했다.

"학교나 학부모들의 인식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부임 초 겪은 '문화적 충격'을 털어놨다. 하루는 학생들과 '북핵 관련 모의 6자회담'이란 주제로 토론수업을 하는데 '일본 외상'역을 맡은 학생이 '모든 악의 근원은 미국이므로 한.중.일이 힘을 합쳐 미국으로 쳐들어 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결론을 내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그 이유를 물었다가 두번 놀라고 말았다. 그 학생의 판단 근거는 '우리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었던 것.

유학 붐에 대한 비판도 날카롭다. "예컨대 대학 이름만 보고 미국 유학을 택하다가는 적응을 못해 국내 대학 가는 것만 못한 경우도 생깁니다."

20년 가까운 이국생활에서 갖게 된 신선한 시각 때문일까. 24세에 하버드대 법학박사가 된 수재의 눈에 비친 모순일까. 졸업 후 미국 유수의 로펌들에서 쏟아진 거액의 스카우트 제의를 마다하고 서울행을 택한 열정도 작용한 모양이다.

그러나 그의 지적이 무게를 갖는 것은 교사 부임 후 그가 거둔 실적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그가 맡은 학생 64명 모두가 미국 대학에 합격했다. 그것도 대부분 아이비리그를 포함, 명문 랭킹 50위권에 드는 대학이었다.

지난 3월엔 독일에서 열린 '세계 학생토론대회'에 5명의 제자를 출전시켜 초반 네덜란드.슬로바키아를 격파하는 성과를 거뒀다. 처녀 출전한 나라치고는 파란이라 할 만했다.

스스로 생각하도록 하는 그의 토론식 수업이 효과가 크다는 증거였다. 이 때문에 수천만원짜리 독선생 자리 제의도 들어왔을 정도로 알 만한 이들 사이에선 관심의 대상이다. 그런데도 그는 평범한 교사이기를 고집한다. 도대체 그는 왜 서울에서, 이렇다 할 매력도 없고 크게 인정받지도 못하는 교육계에서 일할까?

그의 대답은 의외로 싱거웠다.

"하버드 시절 기숙사 사감을 하던 영국인 친구에게서 '항상 끼리끼리 몰려다니는 한국 유학생들을 다른 나라 학생들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가장 큰 이슈'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에겐 큰 충격이었죠."

이뿐 아니었다. 어느 명문 사립고교에선 단 한번의 부정행위가 들켜도 퇴학시키지만 한국 유학생에게만은 재응시 기회를 준다고 했다. '워낙 커닝 문화에 젖은 것을 알기 때문'에 나온 수치스러운 배려였던 것.

전세계에서 IQ 평균 1, 2위를 달리는 우수한 민족이면서도 이처럼 손가락질 받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사회로 나가기 전에 이 궁금증만은 꼭 풀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자신의 뿌리가 한국에 있는 이상 앞으로도 계속 한국과 연을 맺어 일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단다.

그는 서울 생활 일년이 넘었지만 활동 반경은 숙소와 학교 사이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 그가 주말마다 의정부.포천 일대 공장 지역에 간다. 전공을 살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법률상담 위주로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여름, 한국에 온 직후부터다. 자신 역시 시애틀 재래시장에서 의류잡화상을 했던 부모님을 도와가며 어렵게 학창시절을 보낸 지라 이민자.인권에 대한 관심이 각별한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이런저런 시도가 시작에 불과하다고 했다. 조기 유학에 목매는 일부 부모나 암기 위주 입시교육에 매달린 학교 교육을 보며 이곳에서 자기 몫의 일이 많다고 했다.

"해마다 변하는 교육시스템이 언젠가는 안정되겠죠. 굳이 유학가지 않더라도 충분한 국제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키울 수 있는 교육환경을 만들기 위해 온 힘을 다 해 볼 작정입니다."

아직도 10대 같은 앳된 얼굴의 이 청년. 한자 이름을 박은 명함에, 또박또박한 우리말 솜씨까지 더해 왠지 든든해 보였다.

글=김필규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 교과서를 덮어라

조슈아 박의 발칙한 제안 다음주부터 연재합니다

조슈아 박은 학교나 가정에서 이뤄지는 우리 교육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유학 붐에 대해서도 귀띔해 줄 사항이 넘쳐났습니다. 그래서 week&은 다음주부터 그의 칼럼을 정기 연재하기로 했습니다. 생생한 현지 경험을 바탕으로, 바르고 효율적인 학습법과 유학 노하우를 전달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자녀 교육에 관심 있으신 독자 여러분의 많은 호응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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