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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히드대통령, 달러유치·위란토 제거 빠른 행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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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10일 방한한 압두라만 와히드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이번 해외순방은 취임후 다섯번째다. 한국은 그의 25번째 방문국가다. 태국을 거쳐 귀국하면 그는 취임 1백일 남짓만에 26개국을 방문한 셈이다.

앞이 거의 안보이는 불편한 몸으로 보름만에 12개국을 도는 강행군을 펼친 이번 순방길에서 막상 세계의 이목은 인도네시아 국내문제에 쏠렸다. 그가 가는 곳마다 군부실세 위란토 정치.안보조정장관의 사임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군부정치 청산, 부정부패 척결, 아체.말라쿠 등 분리운동과 종교분쟁 등 산적한 국내문제를 두고 와히드가 외국을 돌아다니는 이유는 뭘까.

답은 간단하다. 해외투자 유치 때문이다. 급박한 국내문제를 접어두고서라도 와히드가 직접 나서 국가 신뢰도를 회복하고, 1998년 수하르토 전 대통령을 끌어내렸던 정정불안의 와중에 빠져나간 자본을 다시 끌어들이는 게 급선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의 경제회복 속도는 외환위기를 겪었던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가장 더디다. 제조업체 가동률은 46%에 그치고 있고, 환율도 달러당 7천루피아로 외환위기 전 가치의 3분의1 수준이다.

인도네시아가 하루 빨리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선 해외자본 유치가 관건인 것이다. 와히드는 폭동사태로 가장 많이 빠져나갔던 화교 자본의 재유입을 위해 취임하자마자 그동안 거리를 둬왔던 중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번 순방길에서도 해외자본에 대한 면세혜택 확대 등을 약속하는 등 경제외교에 주력했다.

관심을 끌고 있는 위란토 장관의 제거 노력도 외자유치 노력과 관련이 있다. 즉 그동안 반인권 행위로 악명을 떨쳤던 군부를 그대로 두고서는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기 힘들다.

위란토 흔들기는 군부청산 의지를 과시함으로써 국제적 지지와 투자회복을 노린 고도의 정치게임이라는 것이다.

그의 이런 게임에는 위란토와 군부가 국내외의 지지 부족으로 쿠데타를 일으키기는 힘들 것이란 자신감도 깔려 있다.

이런 점으로 보면 외히드가 해외에서 위란토의 사임을 요구한 발언들은 국내정치를 불안하게 하는 무책임한 발언이라기보다 와히드 특유의 '허허실실' 작전이라는 분석이 더 설득력있게 들리기도 한다.

국제적 관심에 힘입어 군부청산을 마무리짓고, 반부패 운동을 벌여 기업활동에 긍정적 분위기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경제외교에는 와히드 특유의 친화력도 큰 작용을 하고 있다. 가식없고 소박한 그의 스타일은 외국 지도자들에 대한 인간적 접근을 가능케 하는 큰 무기다.

하지만 거의 혼자서 뛰다시피 하는 그의 행보를 두고 일부에서는 '1인 외교' 라고 비꼬기도 한다.

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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