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커스] 헌법이 선거법에 보내는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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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번 선거법 개정은 지역구 수를 일부 줄이고 시민단체의 선거운동을 일부 허용하는 등 진일보한 것이기는 하나 시한에 쫓겨 국민의 의사가 충분히 수렴되지 못한 채 이뤄지고 말았다.

17대 총선 때에도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국민적 관심이 고조된 지금 차분하게 선거법을 재개정해야 한다.

선거란 헌법상의 최고원리인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절차이기에 선거법과 헌법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헌법은 나라의 기초를 이루는 최고의 법으로서 국회에서 통과된 법률이라도 헌법에 위배되면 휴지조각에 다름없다.

헌법 중에서도 핵이라고 할 수 있는 최고원리가 있는데, 이 최고원리가 국민에게 주인으로서의 권리가 있다는 '국민주권원리' 다.

국민이 정치에 참여할 권리인 참정권에는 선거권과 피선거권 등이 있다. 이 중에서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가장 중요하고도 근원적인 권리로서 다른 권리에 비해 우월적 지위를 가지는 권리는 선거권뿐이다.

선거에 입후보할 수 있는 피선거권은 권리로서의 성격조차 모호하고 '법률이 정하는 한도에서' 부여되는 자격에 불과하다.

따라서 선거권과 피선거권은 '헌법상 최고권리' 와 '법률상 자격' 이라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선거법상의 선거운동을 '유권자운동' 과 '당선운동' 으로 구별할 필연성이 제기된다. 선거권에 해당하는 유권자운동은 헌법의 최고원리인 국민주권에 의해 뒷받침되는 것으로서 최대한 보장돼야 하며, 피선거권에 해당하는 입후보자의 당선운동은 사회여건에 따라 합리적인 선에서 결정하면 될 것이다.

따라서 사전선거운동을 금지하는 것이나, 선거기간 중 특정한 형태의 선거운동만 가능하게 하는 선거운동방법의 제한은 당선운동에만 적용해야 하며, 유권자운동에 적용해서는 안된다.

선거법상 제한을 두지 않더라도 허위사실을 퍼뜨리면 형법상의 명예훼손죄로 처벌되고, 집회나 시위를 개최할 때 일정한 절차를 따르지 않으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의해 처벌되므로 유권자운동으로 인해 특별히 사회가 혼란해질 까닭도 없다.

헌법상 선거에는 다섯가지 기본원칙이 있는데, 국민 모두에게 선거권을 준다는 보통선거의 원칙, 선거인의 투표가치가 평등하게 취급돼야 한다는 평등선거의 원칙, 중간선거인이나 정당에 의한 간접적인 방법이 아닌 유권자가 직접 선출해야 한다는 직접선거의 원칙, 비밀선거원칙, 자유선거원칙이 그것이다.

우선 평등선거원칙과 관련해 선거구당 인구편차가 문제된다. 이번 선거법은 최소인구수와 최대인구수가 9대 35로서 1대4라는 위헌기준을 아슬아슬하게 비켜갔다.

그러나 1대4는 무효가 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일 뿐 적절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도시의 젊은이가 1표를 행사하고 지방의 노인이 4표를 행사하는 것은, 그 자체로 평등선거원칙에 심히 위배될 뿐만 아니라 지역감정의 해소나 정책선거로의 전환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한편 지역인물에 대한 투표가 전국구 비례대표에 전용(轉用)되는 1인1표제가 그대로 유지됨으로써 직접선거원칙 위반으로 위헌시비에 휩싸일 가능성이 남게 됐다.

문명국가에서 일반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1인2표제는 국민이 인물도 선택하고 정당도 선택할 수 있게 해 선거권이 확대되는 대표적인 장점 외에도 인물과 정당에 대한 선호도가 달라 투표를 포기하는 기권사태를 줄일 수 있고, 인물과 지역 중심의 선거가 아닌 정당과 나랏일 중심의 정책선거로 유도할 수 있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더구나 보수 일색의 우리 정당구조 하에서 진보세력을 의회구조 안에 무리없이 포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어 이번에 반드시 채택돼야 했다.

1인2표제를 채택하되 국회가 지역이권챙기기에 빠지지 않고 나랏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지역구의원과 비례제의원의 수가 반반이 되도록 바꾸어가야 한다.

국민에게 뽑혀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은 유권자를 향해 '선거법을 지키라' 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헌법의 주인인 국민으로서 국회의원을 향해 이렇게 이야기해야겠다. '헌법을 지켜라. 헌법에 맞게 선거법을 고쳐라. '

박주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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