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 누가 프로야구를 죽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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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프로야구가 홍역을 치르고 있다. 프로야구 선수들이 사발통문을 돌려 노조의 전 단계로 보이는 '선수협의회' 를 전격 결성하자 사용자에 해당하는 구단측이 발끈하고 나선 것이다.

75명으로 출발한 선수협은 이틀만에 1백30여명으로 참여 선수가 불어났으나 보름여가 지난 지금은 구단측의 집요한 탈퇴 권유로 출발때보다 크게 줄어 20여명만 남은 상태다.

선수들의 이같은 움직임은 전에도 몇차례 있었지만 그때마다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났었다. 이 때문인지 구단이나 한국야구위원회(KBO)측은 이번에도 눈을 부라리고 억누르는 방식으로 일관하고 있다.

즉 회유와 협박.설득으로 가담을 막는 한편 강경파나 주동 선수는 팀에서 내몰아버리는 전략이다. 마치 전교조 출범 당시의 정부 대책처럼 말이다.

프로야구의 3요소는 야구 팬과 선수.구단이다. 82년 출범한 우리나라 프로야구는 구단이 선수들에 비해 현저하게 우월적 지위를 누려온 게 사실이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사회.경제적 발전에 따른 자생적 출범과 달리 군사정권의 압력과 비호아래 급조됐다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더욱 그랬다.

선수협 사태는 구단과 대등한 위치를 요구하는 선수들의 몸부림이요, 생존권 싸움이다. KBO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8개 구단 전체선수 4백1명의 평균연봉은 3천3백84만원이다.

억대 스타도 있지만 연봉 1천만원 이하도 수두룩하다. 외국과 비교가 안되는 것은 물론이고 길지 않은 선수생활에다 부상 위험 등을 감안하면 너무도 빈약하다.

생계유지가 어렵더라도 선수가 불만을 털어놓는 것은 금물이다. 구단에 밉게 보이면 시즌내내 괴로운데다 방출도 감수해야 한다. 팀의 간판스타가 본인도 모르게 하루아침에 날아간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KBO에 낼 수 있는 연봉조정신청도 형식에 불과하다. KBO측이 매번 구단측 손만 들어주기 때문이다.

84년 이후 75건이 신청됐지만 1건도 선수가 이긴 경우는 없었다(노조가 있는 미국 메이저리그의 경우 선수보다 구단이 우세하지만 지난해까지 2백36:1백81로 4:3 정도의 비율이다).

7년이 지나면 해외진출 허용, 10년이면 자유계약 선수로 풀린다는 이른바 FA제도가 지난해 도입됐지만 대부분 선수에겐 그림의 떡이다.

구단 동의나 규정 투구횟수.출전 경기수 등 온갖 조건을 붙여놓은 탓이다. 특히 병역의무까지 있으므로 대졸 선수는 고교 졸업후 16~17년간 계속 '무사고' 라야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오죽했으면 선수들이 이를 '노비문서' 라고 부르겠는가.

선수들도 정신차려야 한다. 내부 분열은 팬들에게 분노를 안겨줄 뿐이다. 삼성.현대 등 상대적으로 여건이 괜찮은 구단의 선수들이 모두 외면하고 있는 것은 잘못이다.

일부 선수가 기자회견을 하며 선수협을 깎아내린 부분은 정말 어리석은 짓이었다. 어렵고 힘들어하는 동료를 도와주고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이 진정한 스포츠맨십이다.

이들을 조종하며 선수 분열을 획책하는 세력은 프로야구를 황폐화시키는 주범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선수협 결성은 이제 시대적 흐름이다. 미국 선수노조는 66년, 비슷한 성격의 일본 선수회는 85년 결성됐다. 구단 차원에서 시기상조라거나 적자를 이유로 막을 수 있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

구단별로 한해 50억원 안팎씩 적자라고 주장하지만 그 몇배의 광고효과가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선수협이 결성되면 프로야구를 그만 두겠다" 는 망발로 사태를 악화시킨 KBO총재에게 해결이나 중재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중간 관리자의 위치에서 보신(保身)에 급급한 구단 단장들은 더욱 그렇다. 엄동설한에 어린 선수들이 길거리에서 떨고 있는데 그많던 선배나 원로.해설자들은 다 어디갔는지 궁금하다. 혹시 구단의 눈밖에 나면 불이익이 돌아올까봐 몸사리는 게 아닌지 묻고 싶다.

결국 이 사태는 야구인 모두의 책임이다. 그러므로 구단주를 포함한 야구인들이 해결하는 길밖에 없다.

특히 구단측은 문제선수들을 제외하는 등 적당히 장을 세워도 팬이 찾아올 것이란 생각은 버려야 한다. 열악한 구장시설, 우수선수 외국 팔아넘기기 등 문제가 많았지만 그동안 팬들은 참을만큼 참았다.

스카우트 파동을 적당히 봉합하고 나온 요즘 배구경기장의 텅 빈 관중석이 두렵지도 않은가.

권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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