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금 100만원 = 당선무효’는 비현실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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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나라당 일각에서 선거법상 당선무효인 벌금 100만원을 300만원 또는 500만원으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국회 정치개혁특위 위원인 한나라당 이범래 의원은 15일 “정개특위에서 당선무효형인 벌금 100만원을 현실에 맞게 상향, 개정하는 논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벌금 100만원 조항이 도입된 뒤 10여 년이 지나 사회 변화에 맞지 않고 사법부의 판결도 제약하고 있다”며 취지를 설명했다. 안상수 원내대표도 “정개특위가 개정안을 마련하면 당 차원에서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개정론에 힘을 실었다. 안 원내대표는 “100만원 조항 때문에 총선 이후 2년 동안 재선거가 실시돼 국력 낭비와 고비용을 초래하고 국회 운영도 불안정하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핵심 당직자도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직 상실형이 벌금 100만원으로 비현실적이라는 데 중앙선관위는 물론 야당 의원들과도 공감대가 있다”고 말했다.

선거법 264조 ‘선거범죄로 인한 당선무효’ 조항은 통합선거법이 제정된 1994년부터 ‘100만원 이상 벌금형’으로 유지돼 왔다. 이 조항에 걸려 15대 국회 7명→16대 10명→17대 12명이 중도에 의원직을 잃어 ‘국회의원의 저승사자’라는 말까지 나온다. 18대 들어선 당선무효가 확정된 16명 중 일반 형사법상 징역형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김종률 전 의원을 빼면 15명이 이 조항에 걸려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그러나 법 개정이 쉽게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불법선거를 조장하냐’는 당 안팎의 비판 여론이 거세기 때문이다.

한국정당학회 회장인 경희대 임성호(정치학) 교수는 “당선무효형을 완화할 경우 선거범죄를 봐주자는 거냐는 국민적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신 현수막 게시나 명함 배포, 집회의 제한 등 지나친 선거운동 규제를 푸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주성영 제1정책조정위원장(법사위)은 이날 “사법부가 뚜렷한 양형 기준을 마련해 당선무효가 자의적으로 남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옳다”면서 개정 반대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소속인 김충조 정개특위 위원장은 “여당이 관련 선거법 개정안을 내거나 공식 제안을 하면 논의는 할 수 있겠지만 국민 여론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겠다”고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장광근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정개특위나 당내 기구를 통해 현실성 있는 대안을 논의하되 국민 정서를 감안해 굉장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효식·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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