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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원조를 찾아서] 음악실 ‘녹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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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2일 대구시 중구 화전동 ‘녹향’ 음악감 상실 앞에서 주인 이창수(87)씨가 간판을 가리키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대구시 중구 화전동 2-8번지. 대구역에서 남쪽으로 뻗은 중앙로를 따라 100여m 가다 보면 왼쪽에 허름한 5층 건물이 보인다. 건물 입구에 ‘음악실 녹향’이란 간판이 걸려 있다. 2층 음악감상실에 들어서자 130㎡ 크기의 홀이 나온다. 70개의 좌석과 작은 무대가 설치돼 있다. 나무로 짠 나팔 모양의 커다란 스피커가 눈에 띈다. 1947년 구입했다는 영국제 스텐토리안 제품이다.

이곳이 대한민국 고전음악(클래식) 감상실 제1호다. 46년 10월 이창수(87)씨가 문을 연 이후 63년간 명맥을 이어왔다. 두 번째 음악감상실은 ‘르네상스’였다. 51년 대구 향촌동에서 문을 열었다가 59년 서울 종로1가로 옮겼다. 이씨는 대구역 앞의 음향기기상에서 일하다 클래식 선율에 빠져 음악감상실을 차렸다.

녹향은 한국전쟁이 나면서 명소가 된다. 화가 이중섭(1916~56)과 시인 유치환(1908~67)·조지훈(1920~68)·박목월(1916~78)·양명문(1913~85), 국문학자 양주동(1903~77) 등 피란 문인과 예술인들이 이곳을 드나들었다. 이중섭은 구석 자리에서 담배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고 양명문은 시를 썼다고 한다. 가곡 ‘명태’의 가사는 여기에서 탄생했다. 양명문 시인이 쓴 시에 변훈이 곡을 붙인 것이다. 녹향(綠香)은 ‘녹음처럼 음악의 향기가 우거지라’는 뜻에서 지었다.

녹향은 80년대부터 내리막길을 걷는다. 대학생 등 젊은이들이 팝송을 듣기 위해 DJ가 있는 음악다방으로 발길을 돌렸기 때문이다. 녹향은 여러 차례 자리를 옮겨 다니다 90년 현재의 자리로 이전했다. 경영난도 심해져 한 달에 30만원 하는 건물 임차료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다. 어려움에 처한 녹향을 살리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그랜드심포니오케스트라의 박향희(43·여) 단장 등 지역 예술계 인사들이 17일부터 21일까지 녹향에서 ‘마에스트로(지휘자), 녹향으로 가다’라는 주제의 음악회를 열기로 했다. 이현세(경북도립교향악단) 등 지휘자들이 개런티 없이 일일 DJ 역할을 맡기로 했다. 김현철(61·계명대 의대) 교수는 “대학생 때인 60년대 말 이곳에서 음악을 듣곤 했다”며 “의미 있는 곳인 만큼 역사를 이어갈 방안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구=홍권삼 기자, 사진=프리랜서 공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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