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딛고 성공신화 이룬 하림각 남상해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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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극한의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았던 우리 세대의 이야기를 요즘 젊은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

서울시 부암동에 위치한 중국집 하림각 남상해(南相海.62)회장. 그는 최근 그의 자전 수필집 '나는 오늘도 희망의 자장면을 만든다' 를 출간했다.

南씨는 이 책을 통해 굶어 죽지 않기 위해 무작정 상경한 열살의 '철가방' 어린아이가 '세계에서 가장 큰 자장면 집' 회장이 되기까지의 피나는 과정을 소개했다.

1938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난 南씨는 일본에서 교편을 잡았던 부친 밑에서 유복한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45년 해방과 함께 아버지의 사업 실패가 잇따라 가족의 생활은 급전직하, 거의 파탄 상태에 이르렀다.

충남 보령의 나환자 숙소 단칸방에 10명이 넘던 식구가 몸을 담았던 南씨 가족은 48년 4명의 피붙이들이 굶어 죽는 참혹한 경험도 했다.

같은해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홀홀 단신으로 상경했던 南씨는 혹독한 서울 생활에 못 이겨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 명동의 한 중국출신이 경영하던 중국요리 식당에 취직한 이후 10여년 간 타고난 성실성과 삶에 대한 집념으로 서울 생활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가 어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쓰기를 꺼려했던 중국집 주인도 자기 몸집보다 더 큰 물지개와 배달통을 가뿐히 들어내는 아이의 독기에 두 손을 들었다.

한국인을 철저히 차별하던 이 주인도 南씨에게는 '어깨너머로' 의 방법으로나마 요리법을 전수하기 시작했고, 그 덕에 62년 워커힐의 요리부장으로 취직 할 수 있게 됐다.

간판글자를 몰라 배달을 못했던 아픈 경험을 다시는 겪지않기 위해 12세부터 독학으로 공부를 해 39세에 대학을 졸업하는 끈기를 보이기도 했다.

67년 명보극장 뒤 흉가를 빌려 동순루라는 음식점을 내 독립을 한 그는 이어 남산의 '다리원' , 여의도의 '열빈' 등을 열며 사업을 키워 나갔다.

지금은 대지 9천2백평, 건평 4천6백평, 종업원 1백명이 넘는 초대형 음식점 하림각의 회장이 됐다.

그는 동순루 개업 때 11평의 작은 중국집에 당시 국내 최고의 요리사를 초빙하는 배짱을 보였다.

또 더럽다는 중국집의 이미지를 깨기 위해 투명한 유리창으로 주방을 공개하기도 했다.

다리원에서는 '배달 안하는 중국집' 이란 독특한 시도를 하는 등 항상 최고가 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南씨는 "죽는 한이 있어도 꿈은 버리지 말아야한다" 고 그의 성공비결을 밝혔다.

글.사진〓왕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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