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극장 옛 명성 찾으려나…40돌 맞아 재정비 한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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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한국 현대극의 살아 있는 역사격인 실험극장이 창단 40돌을 맞았다. 공식 생일은 10월초지만 최근 입단 30년의 중견배우 이한승(55)을 새 대표로 뽑으며 연극계 '맏형' 자리를 되찾기 위한 준비에 열심이다.

1996년 김동훈 전 대표의 사망 이후 급격하게 추락한 옛 명성에 가깝게 다가서려는 노력이다.

지난 몇년간 연극계는 실험극장의 부진을 걱정해 왔다. '에쿠우스' '아일랜드' '신의 아그네스' 등 숱한 문제작을 쏟아 내며 한국 정통연극의 보루로 존재해 온 실험극장의 '체력 저하' 는 우리 연극계 전반의 부진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실험극장은 실제로 90년대 후반 이렇다 할 작품을 내지 못하고 예전의 타이틀만 이어가는 형편이다.

"중견.신인 단원이 합심해 재창단의 자세로 면모를 일신하겠다" 일단 이대표의 각오는 야무지다.

1960년 김의경.최진하 등이 주축이 돼 "이념 있는 연극을 이 땅에 수립하겠다" 고 선언했던 창단 당시의 자세로 돌아가 정통 리얼리즘 연극의 르네상스를 꾀하겠다는 것이다.

"초창기의 정신을 살려낼 작정이다. 지금은 뮤지컬.실험극.오락극이 득세하지만 연극에도 사이클이 있다. 관객들도 연극의 본류인 정통극으로 돌아올 것이다." 김상노 상임연출가의 말이다.

극단측은 단원 중심으로 운영되는 기존 동인제의 장점을 극대화할 작정이다. 상업성 연극체제에선 동인제만이 흥행 실적.관객 취향에 좌우되지 않고 수준 높은 작품을 만들어 내는 통로라는 판단에서다.

지난해 말 공연해 호평을 받은 '조선제왕신위' 에서 그 가능성을 확인했다.

하지만 극단은 작품으로 말하는 법. 실험극장은 올해 2~3개의 신작을 발표한다. 창작극은 이미 3명의 작가에게 집필을 위촉한 상태다. 70대 노부부의 심리갈등이 뛰어난 번역극 '황혼의 엘레지' 도 준비 중이다.

9월쯤엔 불후의 히트작 '에쿠우스' 를 재공연할 예정. 강태기.송승환.최민식.최재성 등이 거쳐간 명작이다. 그리고 연말에 50여명의 동인 전체가 출연하는 '피가로의 결혼' 을 40돌 기념작품으로 다시 선보인다.

'피가로' 하면 오현경이 연상될 정도로 많은 관객을 웃긴 정통 프랑스 희극이다. 이젠 연극계 원로격에 해당하는 오씨가 직접 연출을 맡아 기대된다. 실험극장이 예 명성을 완전히 되찾기까지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연극계는 예전 레퍼토리의 반복이 아니라 '도전과 창조' 라는 실험극장의 창단 이념의 부활을 요구한다.부단한 스타 발굴과 유능한 연출자의 양성도 시급하다.

이대표는 "장기적인 기획으로 연극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을 적극 개발, 관객들을 다시 극장으로 불러 모으겠다" 고 포부를 밝힌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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