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플루와 네트워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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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호 35면

흔히 “세상 좁다”는 말을 한다. 1967년 미국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 교수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실험을 했다. 미국 중서부 네브래스카주에 사는 사람을 무작위로 160명 선정했다. 이들에게 우편물을 보내 친구 또는 지인(知人)을 통해 동부에 사는 어느 특정인에게 전달하도록 했다. 우편물을 전달받은 사람은 자신의 지인 중에서 그 특정인을 알 만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실험 결과 평균 6번 정도를 거치면 특정인에게 우편물이 최종 배달됐다. 이를 ‘작은 세상 실험(Small World Experiment)’이라고 부른다.

흥미로운 점은 특정인에게 우편물을 최종 전달한 사람들이 생각처럼 다양하지 않고 소수의 몇 명이라는 점이다. 이 몇 명이 결정적인 매개자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 소수의 마당발이 사회적 의사소통에서 핵심적인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허브 역할을 하는 마당발의 중요성을 보여 주는 실험이었다.

74년 미국 사회과학자 마크 그라노베터는 당시 사람들의 구직 방법을 조사했다. 56%가 개인적인 소개를 통해 직장을 구했는데 그중 17%만이 잘 아는 친구를 통해 구했고, 83%는 평소 잘 만나지 않는 그저 아는 사이인 지인을 통해 구했다는 것이다. 이를 그는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구하기 어려운 직장을 찾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보가 필요한데 내가 잘 아는 친구들은 내가 아는 정보와 유사한 정보를 갖고 있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새로운 발상을 얻고자 한다면 나와 행동반경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사람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약한 고리의 강한 힘(The Strength of Weak Ties)’이라고 불렀다. 이 사례는 새로운 연구를 위해 다른 분야의 지식을 활용한 융합연구가 필요한 이유를 말해 준다.

두 가지 연구 사례는 사회 네트워크 구성에서 마당발과 같은 강한 유대 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그와 함께 약한 유대 관계도 중요함을 방증해 준다.

전 세계가 신종 플루(인플루엔자A/H1N1) 확산 때문에 비상이 걸렸다. 바이러스의 정체 등 미생물학적 정보가 알려져 있는 것에 비해 바이러스 전파 경로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감염된 사람의 기침이나 재채기 등을 통해 바이러스가 직접 다른 사람에게 들어가거나, 공기 중 떠다니던 미세 침방울 등이 흡입되거나, 손을 통해 바이러스가 전달되는 것으로 알려진 수준이다. 전파 경로를 명확히 알면 효과적인 예방이 가능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최근 네트워크 이론 물리학자들이 바이러스 전파를 효율적으로 차단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감염 경로에서 주요 매개 역할을 하는 마당발이 있으므로 마당발의 기능을 차단하자는 것이다. 새로운 바이러스 출현으로 백신이 부족할 때 마당발에게 우선적으로 투여해 감염 경로를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방법을 수학과 물리학적 모델링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두 가지 사례에서 본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는 마당발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약한 유대 관계’의 역할도 중요하다. 자주 또는 직접 접촉하지 않아도 감염이 되는 ‘약한 유대 관계’의 경우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무심코 만지는 사무실 서류, 택배 물건, 버스·지하철 손잡이 같은 것이 있을 수 있다. 인체 밖으로 나온 바이러스는 천이나 종이 표면에 묻으면 몇 시간, 플라스틱 같은 매끈한 표면에서는 1~2일, 화폐에 묻으면 며칠 이상 살아남기도 한다. 신종 플루는 호흡기를 통해 감염되지만 손을 통해 호흡기로 감염되는 경우를 차단하기 위해 손을 씻어야 하는 이유다.

따라서 마당발의 차단과 함께 ‘약한 유대 관계’를 함께 차단하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게 신종 플루 위기 극복 방안이 된다. 또한 이런 복잡계의 문제는 사회과학과 자연과학 등 모든 분야의 지혜를 함께 모을 때 슬기롭게 극복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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