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필리스와 다저스는 달랐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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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호 16면

월드시리즈는 이름부터 다른 경기와의 차별성을 내세운다. 다른 챔피언십을 마치 격(格)이 다르다는 듯 내려다보는 도도한 느낌(?)이다. 월드시리즈 마운드를 밟은 코리안 특급, 박찬호도 감회가 남다르다고 했다. 박찬호의 이번 귀국은 여느 때보다 당당한 개선장군의 포스였다.

이태일의 Inside Pitch Plus <135>

지난 10일, 오전에 귀국 기자회견을 마친 그와 저녁을 함께했다. 바쁜 일정과 긴 시간의 비행, 시차 등으로 다소 피곤해 보였다. 월드시리즈 동안 신종 플루도 앓고, 다시 자유계약선수(FA)가 되어 새로운 팀을 선택(불과 2년 전 그는 불러주는 팀이 없어 초청선수 자격으로 다저스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다)해야 하며, 두 딸이 너무 귀엽게 잘 크고 있다는 등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

그 가운데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팀 분위기에 대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는 2년 연속 내셔널리그 챔피언 결정전에서 뛰었다. 지난해는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필리스를 상대해 졌고, 올해는 필리스 유니폼을 입고 다저스를 상대해 이겼다. 그는 그 차이를 설명했다. 다저스와 필리스의 차이. 선수들의 기량에서는 차이가 나지 않는 두 팀의 승부가 그렇게 갈라지는 배경이 뭔지.

그는 이렇게 말했다. “최고의 선수들이 모였어요. 두 팀 모두 그렇죠. 그런데 필리스는 ‘최고’라는 걸 내세우지 않고, 다저스는 ‘최고’라는 걸 알아주길 원해요.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 팀(필리스)의 라이언 하워드나 체이스 어틀리, 지미 롤린스 이런 선수들은 리그 MVP급이죠. 상을 받은 선수도 있고요. 그런데 전혀 그런 티를 내지 않아요. 하워드는 늘 먼저 다가와 인사하고, 엄청 친절하죠. 롤린스(유격수)는 팀에서 중간(허리) 노릇을 잘해요. MVP도 받았던 선수잖아요. 너무 겸손하고, 나서지 않고 그래요. 깜짝 놀랐어요.”

그는 그런 스타플레이어의 겸손한 자세와 솔선수범의 인성이 만들어내는 팀 분위기의 차이를 지적했다. “반면 다저스는 분위기 전체가 카키(cocky:까칠한)하죠. 최근 다저스의 주축이 됐던 노마 가르시아파라나 제프 켄트 같은 베테랑 선수들의 성향이 그렇고, 그런 고참들의 모습을 보면서 후배 선수들이 그렇게 닮아간 거예요. 1, 2년차 선수들도 주전급이 되면 금방 유명세를 치르니까… 후배들이 그런 선배들을 따라 하면서 팀 전체 분위기가 자기 위주로 간 거죠.”

“체이스 어틀리(필리스 2루수, 월드시리즈에서 5개의 홈런을 때렸다)는 시즌 중에 야구장에서 살아요. 보통 오후 7시 경기면 선수들이 3시쯤 운동장에 나오는데, 어틀리는 1시, 이르면 낮 12시에도 나와요. 브래드 리지는 제가 본 마무리투수 가운데 가장 열심히 하는 선수예요. 둘은 말수가 적고 야구 이외에는 다른 건 관심도 두지 않죠. 그런데 제가 필리스 캠프에 간 첫날, 저한테 먼저 다가와 “함께 식사하자”고 한 게 어틀리였어요. 그때도 깜짝 놀랐죠. 다저스 같았으면 자기 운동만 하고 제게 그런 제안을 하거나 하지 않았으니까요.”

박찬호는 그런 팀 문화의 차이가 2년 연속 필리스와 다저스의 명암을 갈랐다고 진단했다. 분명 후배는 선배라는 거울을 보고 자라며, 그렇게 조성되는 구성원 사이의 문화는 개인의 능력보다 더 크게 조직의 성패를 결정짓는 요인이 된다고 했다. 스포츠팀에만 적용되는 교훈일까. 분명 아니다. 학교와 직장, 사회 전체가 가슴으로 느꼈으면 좋겠다. 솔.선.수.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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