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의원들이 전하는 설 민심]'낙천명단' 지역따라 편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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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바꿔 바꿔, 모든 걸 다 바꿔' . N세대 가수 이정현의 히트곡 '바꿔' 가 TV 전파를 타고 어린아이들의 입까지 흥얼거리게 했던 설 연휴. 안방의 정치화제도 시민단체 낙천 리스트와 정치권 대폭 물갈이로 집중됐다.

설 연휴를 맞아 고향의 사랑방과 윷놀이터.재래시장을 두루 누볐던 여야 의원들과 출마 예상자들이 접한 민심은 한결 같이 '대변혁의 총선' 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의원들은 '개혁을 위한 안정론' 과 'DJ정부 중간평가론' 으로 지지를 호소했지만 유권자들의 기존 정당에 대한 반응은 대부분 썰렁하기만 했다.

여기에 시민단체 리스트가 '총론' 에서 지지를 얻으며 젊은층들의 투표 가세 움직임도 감지돼 이번 총선의 투표율이 적잖이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쟁점별로 의원.출마 예상자들이 전한 설 민심을 간추려 본다.

◇ 안정론과 중간평가론〓도시지역의 경우 쟁점이 된 대목. 서울 강북갑의 민주당 김원길(金元吉)의원은 "최근 붐을 이룬 벤처기업.증권투자에 관심이 많은 30대 후반~40대층에서 안정론이 먹혀드는 기류가 있다" 고 주장했다.

金의원은 "70년대 부동산 붐에 이어 두번째 변혁기인 재테크 열풍 속에 안정희구 세력이 늘었고 야당이 정부를 세게 몰았다는 여론이 맞물려 안정론이 설 땅을 찾고 있다" 고 덧붙였다.

광주 동구의 민주당 이영일(李榮一)의원도 "이러다가는 망한다며 첨단 사업으로의 전업 사례까지 늘고 있었다" 며 "선거결과로 큰 요동이 치기를 원치 않는 이들이 많았다" 고 분석했다.

같은 도시지역이지만 수도권.영남권의 한나라당 의원들이 파악한 민심 동향은 달랐다.

서울 송파을의 맹형규(孟亨奎)의원은 "여당이 과반수인데도 나라 꼴이 이런데 무슨 안정론이냐는 얘기가 많았다" 며 "견제론이 더 힘을 얻고 있다" 고 말했다.

영남권에서도 "더 이상 이 정권에서 나라를 안정시키기는 힘들지 않겠느냐는 DJ정권 평가 주장이 강했다" (金武星의원.부산 남을), "모든 선거구에서 한나라당 의원을 당선시켜 DJ정권에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는 민심을 감지했다" (鄭亨根의원.부산 북-강서갑)는 게 야당 의원들의 전언.

그러나 이같은 정치적 쟁점은 농촌 지역에서는 '민생.경제' 문제에 다소 밀려난 분위기다. 아직도 IMF 극복 문제가 주요 관심사였다는 게 농촌 지역 의원들의 얘기다.

◇ 시민단체 낙천운동과 음모론〓설 연휴 중 전국을 강타한 초특급 화제였다는 게 여야 의원들의 전언. "90% 이상이 시민단체 입장에 찬성" (민주당 李承燁부대변인.안양 동안 출마 예정), "관심이 대단해 낙천명단이 상당한 타격을 주겠더라" (민주당 鄭世均의원.무주-진안-장수), "시민단체 얘기 때문에 옷 로비 사건 등 그동안 정부의 실정이 화제에서 싹 사라져 버렸을 정도" (한나라당 정형근의원), "유권자 반응이 상상 이상이더라" (한나라당 白承弘의원.대구 서갑)는 얘기다.

반면 '각론(各論)' 으로 가면 정당.지역.연령별로 편차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자민련 의원들은 충청권에서 '음모론' 이 확산되고 있음을 전했다. 지역구내 재래시장 7곳을 순회한 이양희(李良熙.대전 동을)의원은 "젊은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30대 후반 이상은 김종필(金鍾泌)명예총재가 명단에 포함된 데 대해서는 강한 의구심을 보였다" 고 했다.

김현욱(金顯煜.당진)총장과 강창희(姜昌熙.대전 중)의원도 "처음에는 충격으로 받아들였지만 이제는 시민단체의 실체에 의혹이 많아진 상황" 이라며 "음모론이 먹혀들고 있다" 고 자신했다.

영남권 한나라당 의원들도 '음모론' 확산 분위기를 전했다. 대구 서갑의 한나라당 백승홍 의원은 "오피니언 리더 계층은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지만 수적으로는 열세" 라며 "지난 추석 때만 해도 거론되던 옷 로비.파업유도 사건 등의 정부 실정(失政)이 화제에서 사라져 현 정권의 물타기 작전이 먹혀든 것" 이라고도 분석했다.

경남 창녕의 노기태(盧基太)의원은 "이런 식의 개혁은 사회주의식이라는 얘기조차 나왔다" 며 "영남에서는 역(逆)효과를 낼 것 같다" 고 지역민심을 나름대로 정리.

낙천 리스트에 올랐던 의원들의 곤혹감도 적잖았다. 나주의 민주당 정호선(鄭鎬宣)의원은 "당원들을 대상으로 내가 포함된 것은 총선연대의 실수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집중 홍보해야 했다" 며 "그러나 지역구민들이 내막을 잘 몰라 곤혹스러웠다" 고 토로했다.

반면 시민단체 리스트가 실제 총선에서 어떤 파괴력을 보일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상당히 엇갈렸다.

서울의 민주당 김원길 의원은 "최소한 수도권에서 부정부패로 리스트에 오른 인사는 적잖은 영향을 받을 것 같다" 고 했다.

서울 성북갑의 민주당 유재건(柳在乾)의원은 "시민단체의 명단을 참고하라는 정도는 좋지만 해당 동네에 가 낙선운동까지 벌이면 무질서가 우려된다는 지적도 많았다" 고 신중론을 제기.

반면 한나라당 유종수(柳鍾洙.춘천을)의원도 "시민연대 1백인위원회가 누구로부터 검증을 받았느냐는 부정적 시각도 적지 않았다" 고 반대여론에 무게를 실었다.

부산 영도에 출마할 예정인 민주당의 김정길(金正吉)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시민단체 리스트가 화제였지만 영.호남에서는 지역정서에 밀려 큰 효과는 내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고 설명했다.

◇ 거센 물갈이 욕구〓기존 정치권에 대한 혐오증과 '바꿔' 분위기 또한 여야가 공통적으로 전한 설 민심이었다.

서울 서대문갑에 출마할 예정인 민주당의 우상호(禹相琥)부대변인은 "위문차 찾아간 양로원의 60대 할머니들까지 물갈이 얘기를 하더라" 며 놀라워했다.

부산 남을의 김무성 의원은 "최악의 경우 이번 총선에서 무소속연대가 결성될 가능성조차 배제할 수 없다" 며 기존 정당에 대한 유권자의 기피증을 요약. 부산 사상갑의 권철현(權哲賢)의원도 "물갈이 욕구가 워낙 커 무소속 출마 인사가 최대의 변수가 될 것" 이라고도 예측했다.

안양 동안지역 출마 예정인 민주당의 이승엽 부대변인은 "민주당.한나라당.자민련 등 기존의 모든 것이 싫다는 게 솔직한 민심이었다" 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 높아질 전망인 투표율〓이같은 총선 패러다임의 변화로 투표율이 적잖이 높아질 것이라는 게 여야 정치권의 전망.

서울 마포을 출마 예정인 민주당의 황수관(黃樹寬)홍보위원장은 "네티즌과 젊은층의 '심판하자' 분위기가 확연했다" 며 "시민단체 리스트와 맞물려 투표율이 역대 어느 총선보다 올라갈 것으로 예측된다" 고 분석했다.

최훈.이수호.박승희.김정욱.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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