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엔젤 설친다] 유형과 실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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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투자가를 가장해 벤처기업가들이 공들여 쌓은 사업기반을 순식간에 가로채는 '블랙엔젤' 들은 그 수법 또한 다양하다.

동업을 하자고 했다가 투자금을 내세워 회사의 경영권을 가로 채거나 대신 수출을 해주겠다며 제품을 탈취(?)해 달아나기도 한다. 심지어 기존 기업들이 자금과 기술지원을 미끼로 접근, 물정에 어두운 벤처창업자들을 울리기도 한다.

◇ 경영권 탈취〓핸드폰 동영상 발송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C사의 尹모(33)사장은 직원 3명과 함께 1년여동안 고생끝에 지난해 10월 어렵사리 핵심기술의 90%정도를 개발한 상태에서 투자자 모집 광고를 인터넷에 띄웠다.

이 때 중견기업 K사가 "투자하겠다" 며 경비 절감을 위해 자기 사무실에 입주할 것을 제안해왔다. 이에 尹사장은 K사가 주식의 55%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계약서를 체결한 뒤 K사 사무실에 입주하고 2백50만원까지 지원받아 사업등록도 마쳤다.

하지만 K사는 한달여만에 느닷없이 "사업성이 없어 더 이상 기술개발이 필요없다" 며 "앞으로 자금지원을 하지 않겠다" 고 선언했다.

이에 尹씨는 K사측이 주식의 55%를 차지한데다 마땅한 대응방법이 없자 어쩔 수없이 몸만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尹사장은 얼마후 K사가 정부로부터 3억원의 지원금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 제품 가로채기〓전기가 통하는 섬유를 이용, 도난방지용 노트북 가방을 개발한 H무역 鄭모(37)사장이 블랙엔젤의 마수에 걸려든 것은 지난해 3월. 제품개발까지 마쳤지만 자금이 달리던 鄭사장이 정부와 은행은 물론 창업투자회사를 찾아 투자요청을 했다가 매출실적이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퇴짜를 맞은 뒤였다.

鄭사장은 하는 수없이 인터넷에 엔젤투자를 요청하는 광고를 냈고, 이를 본 姜모씨가 찾아와 자신 소유의 안산시내 대지를 담보로 2억원의 대출을 받게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鄭사장은 은행에 상담한 결과 姜씨의 땅으로 15억원 이상의 대출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듣고 대출을 추진하던 중 이번에는 姜씨로부터 "해외 거래처를 확보하고 있다" 며 "제품수출을 알선해 주겠다" 는 제안을 받았다.

이에 鄭사장은 믿거니하고 4천만원 상당의 제품을 넘겨줬다. 하지만 제품을 넘겨준 뒤 姜씨와의 연락이 끊겼다. 확인결과 姜씨가 담보로 제공한 땅문서도 도난당한 인감으로 위조한 것이었다.

◇ 사업계획서 빼돌리기〓인터넷 중고차 매매사업을 추진하던 鄭모(31)씨가 친구의 형을 통해 Z사의 C사장을 소개받은 것은 지난해 7월. C사장은 鄭씨에게 사무실 운영비.장비구입비.6개월치 직원월급 등 자금 모두를 지원할테니 동업하자고 제안했다.

鄭씨는 별도 법인을 만들어 지분 50%를 받고 공동대표를 맡는 조건으로 제의를 수락, 4개월간 준비해온 사업계획서와 자료를 공개했다.

하지만 C사장은 자신의 회사 명의로 사업을 개시하자 별도법인을 만드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을 바꿨다. 너무 믿은 나머지 계약서도 쓰지않은 터라 대응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안 鄭씨는 몸만 빠져나왔고 Z사는 지금도 인터넷에 중고차 매매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S엔젤클럽 관계자는 "변호사.회계사들이 기업경영에 관여하다 싼 값으로 주식을 양도하라고 압력을 가하기도 한다" 며 "법을 잘 모르는 일부 벤처기업가들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주식을 넘겨준 사례를 종종 듣는다" 고 말했다.

▶블랙 엔젤(Black Angel)〓자금 사정이 어려운 벤처기업을 도와주는 투자자를 '엔젤(천사)' 이라고 하는데 이를 가장해 벤처기업의 경영권.기술정보.물품 등을 빼앗아 가는 사람 혹은 기업을 업계에서는 '블랙 엔젤' 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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