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미·일 갈등과 하토야마 정권의 속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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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일본은 내년 1월부터 인도양에서 미군에 대한 해상자위대의 급유활동을 중단하기로 했다. 오키나와의 후텐마기지를 오키나와 밖이나 국외로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해 2006년 미·일 합의도 사실상 백지화하려 한다. 하토야마 총리는 얼마 전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지금까지 일본은 너무 미국에 의존해 왔다. 미·일 동맹은 중요하지만 아시아를 더 중시하고 싶다”고 언급했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미소로 답했다. 미국이 강력히 반발하자, 일본 외교의 근간은 미·일 동맹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곧 참의원에서 미·일 동맹의 포괄적인 재검토를 주장한다.

미국의 반응은 매우 차갑다. 켈리 미 국무부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궁극적으로 미국과 어떠한 관계를 만들고 싶은지는 일본이 판단할 일이다’고 잘라 말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제 미국의 골칫거리는 중국이 아닌 일본이다’고 보도할 정도다.

1990년대 초 요즘 G2 중국만큼이나 일본이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경제력에 있어서 곧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나오던 시기에 소니 회장과 한 극우 정치인이 쓴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란 책은 화제를 불렀다. 그러나 당시에도 일본 정부는 한번도 미국에 ‘NO’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하토야마는 왜 ‘NO’라고 말하는 것일까? 특히 일본의 국력이 중국에 추월당하고 있는 미묘한 시점에 ‘NO’라고 말하고 있다. 그 답은 하토야마 총리의 개인적 성향 못지않게 민주당 정권의 실권자인 오자와 간사장의 어젠다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지론은 보통 국가다. 보통 국가란 패전에 의해 씌워진 굴레로부터 벗어나 주권 국가로서 국익에 따라 행동하는 국가다. 1차적으로 미국에 의해 만들어진 틀로부터 벗어나는 것으로 ‘미국과의 대등한 관계’ 내지는 ‘아시아 중시’의 방향성이 이를 말해준다. 또한 역사적 콤플렉스, 즉 한국과 중국에 대해 저자세의 입장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자민당은 태생적으로 역사문제에 관한 한 자유롭지 못했지만, 민주당은 역사의 짐이 없는 젊은 정당으로 역사 청산이 가능한 입장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일본 민주당 정권은 역사 청산과 대등한 미·일 관계를 지향해 자주적인 보통 국가화를 추진하려 한다고 판단된다. 하토야마 총리의 역사에 관한 용기 있는 발언을 환영하면서도 무엇인가 찜찜한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워싱턴에서는 미·일 관계를 ‘가정 내 별거 중인 부부’로 표현한다. 이쯤 되면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다. 바로 얼마 전까지 ‘이혼을 앞둔 별거 중인 부부’로 비유되던 노무현 정부 시절 한·미 관계다. 하토야마 총리의 ‘이미(離美)노선’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이명박 대통령에게 중대한 기회를 제공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미국에 실컷 할 말을 한다고 했지만 이라크에 3600명이나 파병하면서도 실리를 잃었던 반면,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는 대미관계 중시 입장을 통해 실리를 챙겼다. 하토야마 정부는 미·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악화된 관계 수습을 위해 70억 달러의 아프간 지원 대책을 급거 마련 중이다. 일본에 실망한 오바마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동맹국의 따듯한 말 한마디가 필요할 것이다. 말보다 실리다. 21세기 한·미 전략동맹의 굳건함을 확인하면서 한·미 FTA, 북핵 문제에 있어서 실리를 얻는 한·미 정상회담을 기대한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