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씨 "일부러 감방 가보려고 '내게 거짓말…' 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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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영화 '거짓말' 의 원작자인 소설가 장정일(38)씨는 요즘 대구에서 역사 속에 파묻혀 지낸다.

영화를 두고 음란물 여부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고 검찰에서 수사에 나서는 소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영화가 어떻게 되는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판권 팔고 나서 영화제작하는 사람들이 만든 거니까…, 뉴스도 안 봐요, 요즘은. "

장씨가 철저히 현실을 외면하고도 살 수 있는 것은 필요한 모든 것이 역사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가 몰두하고 있는 역사는 2천2백년 전 중국의 고대사, 진시황과 그의 아들 부소(扶蘇)얘기다.

"부소 얘기를 가지고 연극의 가능한 형식을 모두 시험할 수 있는 연작을 쓰고 있습니다.

여러 명이 출연하는 보통 드라마 형식의 희곡은 이미 다 썼고, 앞으로 모노드라마와 2인극.뮤지컬에 맞는 희곡 3편을 더 쓸 겁니다. "

그가 역사 속에 빠진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1996년 봄 TV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던 그는 진시황에 대한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멘트가 귓속에 쾅하고 울림을 느꼈다.

"이 편지 때문에 부소가 자결했고, 그래서 진나라는 망했다. "

도대체 무슨 편지이길래 사람이 죽고 나라가 망했을까. 그는 뭔가 추악하고 복잡하게 얽힌 권력다툼에서 풍겨나옴직한 음모의 냄새를 맡았다고 한다.

부랴부랴 사마천의 사기(史記)와 진시황 평전 등 관련 자료를 찾아본 결과 짐작했던 그대로였다.

진시황이 죽자 환관 조고(趙高)가 권력을 가로채려고 황제의 편지를 조작했음을 확인했다.

"부소는 죽을 이유가 없는 사람입니다. 부소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싶었습니다. "

장씨가 수천년전 중국의 한 왕자에게 남다른 애정을 느낀 것은 부소의 운명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라는 권력에 의해 파괴되는 인간의 모습은 작가 자신인 동시에 그가 추구해온 작품들의 뼈대다.

당시 그는 영화 '거짓말' 의 원작인 '내게 거짓말을 해봐' 를 한창 구상하던 중이었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 라는 작품이 한층 도발적인 내용으로 만들어진 것은 부소 때문이었다.

"부소의 울분을 보다 효과적으로 되살리기 위해서 제가 더 당해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곧 국가고 권력이죠. 감방에 가고 싶었습니다. "

장씨는 감방에 가려고 '내게 거짓말을 해봐' 라는 소설을 이용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97년 5월 음란문서제조죄로 법정에서 재판을 받던 중 구속됐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두 달 만에 보석으로 풀려나왔다.

"너무 짧았다" 고 한다.

그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작업에 돌입해 첫 희곡을 탈고했다.

이미 탈고한 희곡 '일월(日月)' 은 세계의 문학 봄호에 발표될 예정이다.

모노드라마는 코미디가 될 것이라고 한다.

아들을 권력의 도전자로 간주해 북방으로 귀양보내는 아버지나, 엉터리 편지를 받고 죽는 아들이나 모두 '웃기는 일' 들이라는 것이다.

'현실에 좌절한 작가들이 역사 속으로 도피하는 것과 같은 변신이 아니냐' 는 질문에 장씨는 "난 항상 권력과 싸운다" 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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