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생명] 4. 안락사 허용 -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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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 수세기 동안 우리의 도덕체계 밑바닥에는 인간의 생명은 신성하며 결코 침해될 수 없다는 원칙과 믿음이 깔려 있었다.

전쟁 등 예외적 상황을 제외한다면 무고한 인간을 죽이는 것은 도덕적으로 그릇된 일이라는 게 우리가 공유해온 믿음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이 지난 세기 종반부터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안락사 옹호론이 대표적인 사례다.

안락사 옹호론자들은 엄격한 조건만 충족된다면 인간이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법적.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인간 생명이 신성하고 침해될 수 없다는 원칙 대신 인간 삶의 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원칙을 내세운다.

어떤 인간들의 삶의 질은 죽음보다도 못할 수 있고, 그럴 경우 인간은 품위 있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네덜란드에서는 1980년대 중반 이후 환자의 자발적 의사로 매년 수천건씩의 안락사가 행해지고 있다.

90년대 미국.캐나다.호주에서는 안락사를 합법화시키려는 몇차례의 시도가 있었다.

국내 병원에서도 인공 호흡기를 비롯한 생명유지장치들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런 장치에 의존해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말기 중환자들의 삶의 질은 형편없이 낮다.

만약 인간 생명이 신성 불가침하다는 원칙을 내세워 우리가 이들로부터 품위 있는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빼앗는다면 이는 심각하게 반성해 보아야 할 일이다.

더구나 이들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연장시키는 것은 환자 자신뿐 아니라 가족.의료진.병원.사회에도 부담을 주는 일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불치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도 마찬가지다.

비록 자신이 원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자신이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 점은 아마 자살의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안락사 옹호론과 불가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호스피스'(hospice) ' 제도가 하나의 타협안으로서 제시될 수 있다.

호스피스의 정신은 인간 삶의 질을 존중한다.

이 점은 안락사의 정신과 차이가 없다.

하지만 안락사와 달리 환자의 죽음을 결코 의도하지 않는다.

그래서 호스피스는 말기환자가 품위를 유지한 채 자연적인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단지 소극적인 치료만 제공한다.

인간이 자발적 의지에 의해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주장을 우리 사회에 적용하려면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첫째,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는 인명경시 풍조가 하루 빨리 개선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안락사에 대한 논의가 자칫 인명경시 풍조를 부채질할 위험이 있다.

둘째, 사회.경제적 약자들 특히, 장애인과 노인들이 자신이 원치 않는 안락사를 당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이런 장치가 없다면 안락사는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아니라 죽어야만 하는 의무로 돌변하게 될지도 모른다.

구영모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연구원, 생명의료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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