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는 변혁중] 카르텔정당 깨기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유시민(시사평론가).유석춘(연세대 교수.사회학).정수복(사회운동연구소장)씨에 이어 마지막으로 심지연(경남대.정치학)교수의 발제를 싣습니다.

이어 마련할 독자 토론장에 많은 의견을 보내주십시오.

팩스(02-751-5228)나 e-메일, 또는 Cyber중앙(http://www.joins.co.kr) '쟁점.기획.시리즈' 의 '한국사회는 변혁 중' 을 이용하십시오.

게시판:(http://bbs2.joins.co.kr/servlet/ViewList?ID=kms)

[발제 4]

정치권 일부에서 시민단체가 전개하는 낙천.낙선운동을 '음모론' 으로 몰고 있으나 이는 정치권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시민의 개혁의지를 배제하려는 지역주의적 전략이다.

미흡한 점이 있지만 이 운동은 기존 여야 정당들이 기득권 유지와 집단적 존립이라는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고 정당 본연의 역할과 기능을 내팽개쳤기 때문에 시민사회가 자구적(自救的) 차원에서 의사표시를 한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럼에도 '음모론' 을 들고 나온 것은 시민의 개혁의지를 지역주의로 물타기해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면서 시민을 배제하려는 낡은 '음모' 의 재판(再版)인 것이다.

정당의 존립근거는 국가와 시민사회를 잇는 교량역할, 즉 시민사회의 요구를 국가에 반영하고 국가의 정책을 시민사회에 전달하는 데 있다.

혈액순환이 순조로워야 인체가 건강한 것처럼 정당의 매개로 국가와 시민사회 사이에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져야 그 사회가 건전하다.

그러나 우리 정당은 이같은 정당 본연의 역할을 망각해왔다.

정당도 기업처럼 카르텔을 형성해 새로운 경쟁자의 진입을 봉쇄하고 소비자의 이익을 도외시해왔다.

정치시장의 독점을 위해 진입장벽을 높이고 정치 소비자인 시민을 배제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카르텔정당' 은 일차적으로 국가보조금의 증대를 꾀한다.

국가를 정당의 생존을 보장해주는 자원으로 활용한다.

이를 통해 기존 정당의 유지와 동시에 새로운 정당의 출현을 막는 이중의 목표를 달성하고 있다.

원래 정당에 대한 보조금은 강한 정당을 만들어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제도가 악용돼 민주주의의 토대를 뒤흔드는 쪽으로 작용함으로써 시민들로부터 극도의 분노를 사고 있다.

또한 카르텔정당은 선거패배의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고 선거가 자신의 존립 자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한다.

그러기 위해 승자와 패자의 차이를 가능한 한 축소하고 제한적으로만 경쟁하는 규칙을 도입한다.

이제 국가로부터 계속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게 됐으니 구태여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정당의 강령과 정책이 점차 유사해지며 경쟁적인 것보다 일치된 것이 많아진다.

선거결과가 정부의 행동에 미치는 정도도 줄어들어 선거가 유권자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버린다.

마지막으로 카르텔정당은 인적.물적 교류를 통해 국가에 침투함으로써 자신을 준국가기구로 만들어 놓았다.

국가의 한 부분처럼 돼 시민사회와 국가의 의사소통 통로로서의 기능을 중지해 버린 것이다.

이처럼 정당이 매개역할을 방기(放棄)하고 있기 때문에 시민사회는 직접 국가를 상대로 요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됐고,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시민단체의 정치참여와 낙선운동이 발생하는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이같은 카르텔정당의 존립근거는 일차적으로 '음모론' 이 보여주는 것처럼 어떤 정치적 차이도 무의미하게 만드는 지역주의다.

낙천.낙선운동은 이처럼 정당들이 지역적 카르텔을 형성해 국가로부터 온갖 자원을 빼앗아 나누어 갖는 행태를 더 이상 방관하지 않겠다는 시민의 각오를 나타낸 것이며, 바로 이렇기 때문에 이 운동에 대한 지지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시민의 참여를 배제하는 카르텔정당에 대한 도전, '정치 소비자로서의 소비자 주권의 확립' 이라는 차원에서 우선 이해하고, 이런 시각에서 낙천.낙선운동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것이 현재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시민운동을 올바르게 평가하는 태도일 것이다.

심지연(경남대 교수.정치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