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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일 전자회사 경쟁자는 중국”

중앙일보

입력

이코노미스트 전자강국을 자부하던 일본의 추락. 그리고 한국의 추월은 1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모모세 다다시 미쓰이물산 고문에게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었던 이유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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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소니·파나소닉 등 9개사의 3분기 영업이익을 다 합쳐도 삼성전자 1개사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기사가 니혼게이자이신문, 아사히신문 등에서 연달아 나왔다. 일본 미디어는 이를 ‘충격’이라고 보도했다.

모모세 다다시 미쓰이물산 고문 인터뷰 #10년 내 중국 한 전자기업 이익이 한국의 2배 될 수도

그러나 모모세 다다시(百 格·72) 미쓰이물산 고문은 “수년 전부터 한국 기업의 약진과 역전 상황은 일본 경영진 사이에선 이미 회자됐던 일”이라고 말했다. 모모세 고문은 10년 전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1998년 12월 29일자) “日 ‘家電’ 따라잡을 나라는 세계에서 韓國뿐!”이란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 덕 본 한국 기업

10년 전 『한국이 죽어도 일본을 못 따라잡는 18가지 이유』를 집필해 한국에 애정어린 쓴소리를 한 그였지만 전자산업에서 한국의 역전극을 예고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아시아는 물론이고 전 세계를 통틀어 일본에 필적하는 기술과 생산설비를 갖춘 곳은 한국 말고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이 생산하는 제품을 거의 대부분 생산하면서 경쟁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었다. 대만도 경쟁자였으나 대만은 똑같은 반도체를 생산해도 수출물량만 있을 뿐 자국 내에서 다양하게 소비할 가전시장 등이 없었다. 이것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데 방해가 됐다. 그러나 10년 전만 해도 한국의 역전극은 가능성일 뿐이었다. 가능성을 실제로 만든 구체적인 배경은 무엇일까?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 삼성이나 LG 등 한국 전자기업이 실적에서 일본을 앞질렀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일본 전자기업이 부진을 겪게 된 것은 최근 상황이 아닙니다. 정부의 규제가 강했고, 그 안에서 민간기업으로서 역량을 충분히 펼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 기업이 앞지를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답변과 함께 그는 두 개의 휴대전화를 꺼내 놓았다. 하나는 삼성의 애니콜이었고, 다른 하나는 일본제 휴대전화였다.

“한국의 것이 더 얇고 가볍습니다. 전지가 빨리 닳는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한국에는 새롭고 다양한 제품이 일본보다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일본이 기술력이 떨어져서가 아닙니다. 한국 정부가 제조업에 힘을 실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일본에서 휴대전화를 만들 때 통신회사가 이런 휴대전화를 만들면 좋겠다는 등의 일종의 규제를 가합니다.

그러나 한국은 그렇지 않아 제조사가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반도체에서도 정부의 규제가 비일비재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정부 규제가 너무 심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줄로 알고 있으나 내용 면으로 볼 때 일본 정부의 그것보다는 강하지 않습니다.”

그는 미국시장에서 일본, 대만 등과 경쟁을 하며 한국 기업이 경쟁력을 키울 수 있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런 상황 하에서 한국은 미국 시장에서 미국인이 좋아할 만한 물건을 보다 싼 가격에 만드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특히 반도체 시장에서 일본은 높아지는 인건비 등에서 경쟁력을 잃었고 대만은 한국만큼 규모의 경제를 이뤄내지 못했습니다.”

>> 이제 일본 기업이 한국 기업의 상승세를 따라잡는 것 또한 어려워 보입니다.

“일본 기업이 첨단의 기술개발력을 통해 다시 상승세를 타려고 정권교체도 이뤄냈지만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 기업에 한국 기업을 따라잡는 것은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한국도 일본 따라잡으려고 열심히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성장하는 중국에 대한 두려움이 한·일 기업 모두에 클 것이라 생각합니다.

일본 기업은 한국 아닌 중국 의식

13억 중국 인구 중 1%만 전자업계에 종사한다고 생각해도 무섭지 않습니까? 인건비도 쌉니다. 한·일 전자기업이 비용 절감을 위해 중국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면, 경제의 흐름상 한국의 기술력이 중국으로 가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한국의 기술력이 들어갔다고 해도 중국제가 세계시장에 대한 점유율을 높이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마 이르면 5년, 10년 내에 중국 어느 전자기업의 영업이익이 한국의 2배라는 기사가 나올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는 “일본 기업이 걱정하는 것은 중국에서 소니란 이름이, 파나소닉이라는 이름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한·일의 기업들이 준비해야 할 것은 점차 기술격차가 좁혀지는 시장에서 중국 기업들과 경쟁해 살아남느냐 하는 것입니다. 한·중·일이 협력하고 공존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며 지금 그 기반을 닦을 때입니다.”

>> 한국 기업들이 선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선 잘 팔리지 않고 있습니다. 극복 방안이 있다면?

“굳이 한국 기업들이 일본 시장에 목숨을 걸 이유는 없다고 보여집니다. 미국 시장이 있고 중국, 인도 등의 새로운 시장이 있지 않습니까? 다만 워낙 까다로운 일본 고객이기에 일본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면 세계 어디 가서도 성공 가능성은 높을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그는 “굳이 한국 시장을 공략한다면 일본 국민성부터 이해할 것”을 조언했다.

“밥통이나 전기포트 등의 저렴한 제품이면 몰라도 일본 사람들은 일단 한 번 사면 잘 바꾸지 않고 새로운 브랜드에 도전하는 경향이 적습니다. 그러나 일본인이 분명히 따지는 게 있다면 오래 쓰는 만큼 A/S 네트워크입니다. 안타깝게도 한국 기업은 이에 취약합니다. 세븐일레븐이나 로손 등 편의점과 같이 A/S센터를 가까운 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죠. 그렇다고 기업 입장에서 여기저기에 세우려면 비용부담이 큽니다. 저는 한국제 메이커들이 공동으로 A/S센터를 세우는 것을 방법으로 제안합니다. 부품이 크게 다른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는 자동차 산업에 대해서도 “굳이 일본 시장을 뚫고 싶다면 일본인 전체를 대상으로 할 것이 아니라 재일 한국인에게 먼저 한국 차를 타게 하라”는 지적을 했다.

>> 한국은 아직도 일본을 죽어도 따라잡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까?

“전자업계가 잘된다고 해서 한국 전체가 잘사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세계가 주목하는 것도 한국 전자업계의 약진이 아니라 한국인들이 얼마나 마음놓고 사느냐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또 선진국을 판단하는 기준이기도 합니다. 사실 일본인에게 한국 전자업계가 일본을 따라잡았다는 그 사실보다 더 큰 충격이었던 것은 최근 발표된 빈곤율이었습니다. OECD 30개국 중 밑바닥 수준인 빈곤율 4위에 해당한 것인데, 한국민들도 그렇지 않을까요? 경제가 어렵다고 해도 대기업 사정은 그리 나쁘진 않았습니다.”

>> 그래서인지 최근엔 도요타 등의 일본 대기업을 배우자는 운동보다 일본전산과 같은 작지만 강한 일본 중소기업에 대한 관심이 한국에선 더 높았던 것 같습니다. 결국 중소기업 육성이 괜찮은 일자리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겠죠.

“중소기업 육성이 한국에서 하루 이틀 된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금융지원 정도는 대기업과의 협력으로 이뤄질 수 있겠죠. 예를 들면 대기업이 협력 중소기업의 보증을 서주는 것도 한국에서 고려할 만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모세 다다시 고문은…

한국에서 39년째 근무하는 일본인이다. 1963년부터 1965년까지 일본 종합상사 도멘의 주재원으로 근무했다. 1971년부터 15년간 포항제철(포스코) 건설현장에서 현장책임자로 일한 그는 1981년 대한민국산업포장을 받기도 했다. 1986년부터는 도멘 서울지점장으로 수백 개의 한국 기업과 거래해 온 한국 경제발전사의 산증인이다. 현재 한국미쓰이물산에서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임성은 기자·lseco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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