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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헌법재판소 미디어법 합헌 결정 옳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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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미디어법에 관한 헌법재판소 결정을 둘러싸고 소란스럽다. 이번 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국회의 ‘날치기 통과’가 적법절차를 어긴 표결로서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함을 인정하고 있다. 위법 사항으로 일사부재의 원칙의 위반, 무권투표 및 대리투표행위 등을 들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국회의원의 권한침해와 그 법의 가결·선포행위의 무효성, 양자를 구별한다. 즉 권한침해의 위법성이 있었다고 해서 법률 자체가 반드시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논리를 취한다.

야당과 일부 학자들은 위법성을 인정하면서 어떻게 법률을 그대로 유효하다고 할 수 있느냐며 수긍하지 못한다. 이 사건이 법률의 위헌심판제청사건이나 헌법소원사건이 아니라 국가기관 간의 권한의 존부 또는 범위에 관해 심판하는 권한쟁의심판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정확한 반응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태도는 처음 표명된 것이 아니다. 김영삼 정권 말기인 1996년의 연말 새벽에 야당의원들에게는 연락조차 하지 않은 채 여당 국회의원들만으로 노동관계법 등을 통과시킨 일이 있다. 어쩌면 이번 미디어법의 심의·표결 과정보다 그 위법성이 더욱 심했다고 할 수 있는 경우였다. 이때 헌법재판소는 (야당)국회의원의 (심의·표결) 권한 침해를 인정하면서도 그 가결선포행위는 재적 과반수가 넘는 국회의원들의 참석하에 이루어진 것으로서 입법절차에 관한 헌법의 규정을 명백히 위반했다고는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위법성은 무효로 연결된다는 논리가 보다 간명하고 상식에 부합할 것이나, 민사법이나 공법관계의 법리는 꼭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 헌법재판소나 대법원도 때로 이 논리를 벗어나서 판단을 내린다. 물론 분명한 다른 논리가 뒷받침한다. 재판관들은 이를 “절차상의 하자는 인정되지만 무효로 할 만한 하자는 아니다” 혹은 “절차상의 하자는 국회의 입법자율권을 존중해 그 시정을 향후 국회의장에게 맡겨둬야 한다”는 등으로 의견을 밝혔다. 즉 우리 헌법재판소는 국회의장에 의한 국회의원들의 권한 침해가 확인되어도 그로 인해 바로 법안에 대한 가결선포행위가 자동적으로 무효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추가로 권력분립의 한계나 국회의 자율권 보장 또는 권한 침해가 중대하고 명백한 헌법위반인지를 따져서 별도로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에서도 그의 직무수행상 상당한 위법행위가 있었음을 인정하면서도 대통령의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의 중대한 법 위반이 없었음을 이유로 탄핵심판청구를 기각한 바도 있다.

헌법재판소는 우리가 바깥세상에 내놓고 자랑할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다. 헌법재판소가 없을 때와 그 발족 이후의 여러 상황을 비교해 보라. 우리가 얼마나 달라졌는가! 헌법재판소와 헌법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이번 결정에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그 결정이 선례에 따르고 또 나름의 합당한 논리를 갖추고 있음을 인정해 차가운 시선을 거두어 주었으면 한다.

신평 경북대 법학대학원 교수·전 한국헌법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