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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f Battle] 승자의 대결 2라운드 - 주제 G20 정상 만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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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 배틀 예선에서 승리한 셰프 8팀이 ‘승자들의 대결’을 벌인다. 토너먼트식으로 최종 승자를 가리게 된다. 그 1라운드에선 주제로 주어진 스토리에 따라 요리를 만들게 된다.

동치미 얹은 샐러드, 된장 입힌 한우로 한식 맛 살짝

‘정상을 위한 진짜 만찬’. 이상학 셰프는 두 번의 실제 정상회담 만찬과 50번 이상의 청와대 요리 출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실전과 같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 만찬을 선보였다.

실제 정상회담 만찬에 나오는 요리는 ‘화려함’보다는 재료의 본래 맛을 지키는 ‘중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 외국의 정상에게 익숙한 양식을 기본으로 하되,

끝 맛에 한식의 여운을 남겼다. 애피타이저에서 흔히 맛볼 수 있는 해산물 샐러드에 동치미 젤리를 얹고 메인에서 최상급의 횡성한우에 된장의 맛을 살짝 입혔다.

디저트로는 마치 물방울을 보는 듯한 스위스 머랭 무스를 선보였다.

글=한은화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① 애피타이저│감 식초에 절인 해산물 샐러드와 동치미 젤리

설탕보다 단맛이 강한 스테비아·초코민트·파인애플·세이지 등 평소에 접할 수 없었던 각종 허브가 풍성하게 나왔다. 그 위에 올린 해산물은 직화로 구워 육즙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 쫄깃한 식감을 살렸다. 동치미로 만든 주홍빛 젤리를 얹어 마지막에 한국적 터치를 가미했다.

② 메인│한지에 싸서 절인 횡성한우와 고구마 퓌레

등급·부위 모두 최상급인 횡성한우 안심을 사용했다. 고기는 한지에 싸서 재래된장, 가평 잣 막걸리와 안동 소주를 섞은 소스에 담갔다. 한지를 쌌을 때 육즙은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으면서 밖의 성분은 잘 흡수되는 성질을 이용했다. 한우의 본 맛을 살리기 위해 양념은 1시간 정도만 했다.

③ 디저트│스위스 머랭으로 싼 3가지의 무스와 컴포트

언뜻 보기에 하얀 물방울 세 개가 접시에 떨어졌다. 모양은 비슷하지만 모두 다른 맛이다. 배·호두·헤이즐 넛 컴포트를 마스카포네 크림·바닐라· 초콜릿 무스로 감싸 속이 꽉 찼다. 모양을 내기가 힘든 스위스 머랭을 완벽하게 물방울 모양으로 만들어 ‘최고의 기술’을 과시했다.



입맛 돋우는 막걸리 셔벗, 연잎 속 한우로 한식 맛 흠뻑

‘한국의 소박한 음식’. 정종언 셰프가 잡은 컨셉트다. 말로는 ‘소박’이었지만 한국 밥상에서 흔히 쓰이는 재료를 세련되게 연출했다. 애피타이저로는 부추·가지나물을 샐러드 형태로,

식전주 개념으로 막걸리 셔벗을 냈다. 메인으론 안동한우 등심을 이용했다. 한우도 다양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호텔에서 많이 쓰는 횡성한우나 제동한우 대신 안동한우를 사용했다.

겉은 숯불로 굽고, 연잎으로 싸서 소금을 덮어 굽는 한식과 프랑스식 조리기법을 두루 사용한 스테이크를 선보였다. 고르곤졸라 치즈로 만든 아이스크림과

한국 고유의 디저트인 매자과를 곁들인 후식은 동서양 맛의 조화를 잘 표현했다.

④ 애피타이저│부추·가지나물 샐러드를 곁들인 바닷가재와 막걸리 셔벗

가장 한국적 반찬, 나물이 바닷가재에 곁들인 샐러드로 변신했다. 바닷가재 카르파초와 곁들일 수 있는 나물로 맛이 부드러운 가지가 선택됐다. 식전주로 와인 대신 막걸리 셔벗을 냈다. 가라앉힌 막걸리에 물엿과 설탕을 넣어 얼려 톡 쏘는 막걸리 맛이 강한 셔벗을 만들었다.

⑤ 메인│연잎 소금으로 싸서 오븐에 구운 안동한우 등심과 연잎 김치밥

등심 덩어리를 구운 뒤 연잎으로 싸고, 소금과 어린 연잎을 갈아 섞은 것을 고기 위에 덮어 오븐구이를 했다. 덩어리 고기를 즉석에서 썰어주는 카빙 서브를 했다. 연잎의 은은한 향이 부드러운 고기에 배어 향긋했다. 김치 리조토를 곁들였다.

⑥ 디저트│고르곤졸라 아이스크림과 삼색 매자과

아내와 이탈리아 여행 때 먹어본 고르곤졸라 아이스크림을 재현했다. 더해진 과실주와 꿀, 트러플은 잘 어울렸다. 여기에 한국식 후식의 대표격인 매자과를 단호박·쑥·백년초의 세 가지 색으로 준비했다. 세계 정상들에게 한국 색동저고리의 정감을 알리려는 의미가 담겼다.

이가영 기자


이상학 셰프
밀레니엄 힐튼 정종언 셰프

왕의 식사 아니잖아요, 화려함 멀리했습니다

이상학(37) 셰프는 지난달 조선호텔을 나와 CJ 푸드빌로 이직했다. “10년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보니 정신도 없고 배틀에 대한 자신감도 떨어져 자신이 없었어요.” 실제로 그는 이번 배틀 준비를 서울 왕십리의 개인 스튜디오에서 홀로 했다. “그런데 주제를 듣자마자 하늘이 나를 도왔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는 2000년 아셈정상회의, 200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만찬 때 요리팀에 참가했고 청와대 출장 요리 경험도 많았다. 실제 회담 만찬에는 규칙이 많다. 회의의 흐름을 깨지 않기 위해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고 원재료의 맛을 살리며 음식의 ‘중용’을 지켜야 한다.

이 때문에 그가 이번 배틀에서 보인 요리는 이전의 화려한 요리와 달리 소박했다. 정상들의 만찬은 왕의 식사가 아니라 맛있게 먹은 후 열띤 회담을 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의외로 도움의 손길이 답지했다. 아는 선배가 농장에서 신선한 허브를 보내줬고 횡성축산업협동조합에선 최상등급 안심 3㎏을 보내줬다. 승자의 대결 1라운드에서 이 셰프가 메인 요리에 횡성한우를 쓴 것을 보고 조합 측이 경기일에 맞춰 보내준 것이다. 그릇을 구하러 갔던 한국도자기에선 셰프 배틀에 나가기 위한 그릇을 찾는다는 말을 듣더니 봉황과 십장생 무늬가 금박으로 입혀진 청와대 만찬용 그릇을 특별히 제작해줬다. 그는 “셰프 배틀을 할수록 주변에서 이렇게 도움을 받게 돼 왜 요리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점점 명확해지는 것 같다”며 웃었다.



밀레니엄 힐튼 정종언 셰프
한식 세계화 생각났죠, 서민적 재료 썼습니다

“나오길 정말 잘했단 생각이 들어요. 내 자신의 능력도 다시 한번 가늠해 보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정종언(35) 밀레니엄 서울힐튼호텔 셰프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세 번의 배틀에 출전하면서 과제가 주어질 때마다 꼬박 3주간 밤을 세웠고, 가족들과 약속한 여름 휴가도 반납했고, 식재료 확보를 위해 재래시장을 발이 닳도록 뛰어다녔던 그다. 하지만 마지막 결승 문턱에서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서운함이 클 텐데도 그는 오히려 득이 더 많았다며 웃어 보였다.

힐튼 내 대표 레스토랑 ‘시즌즈’에서 요리사 생활을 시작한 만큼 정 셰프 요리의 기본은 프렌치다. 하지만 ‘G20 정상 만찬’이란 주제를 들었을 때 그는 ‘한식의 세계화’를 떠올렸다. 그리곤 ‘소박한 한식’으로 컨셉트를 정했다. 웬만한 세계 정상이라면 궁중음식으로 알려진 ‘소박하지 않은’ 한식은 수 차례 먹어봤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올 4월 런던 G20 정상회담 당시 유명 셰프 제이미 올리버가 스코틀랜드산 연어 요리, 북웨일스산 양 어깻살 구이, 더비셔 지방의 전통 디저트 등 영국 고유의 맛으로 만찬을 준비했던 데에서도 영감을 받았다.

연잎을 구하려고 수소문한 끝에 경북 상주의 한 사찰에서 얻어냈다. 셰프 배틀을 정리하며 그는 아내와 박효남 총주방장,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한 호성수(31)·박종선(31) 셰프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는 앞으로도 셰프 배틀과 같은 코너가 계속 됐으면 한다고 했다. “요리를 하는 사람들 모두가 각자 추구하는 바가 다르면서도 모두 훌륭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란다.



심사위원단

박재은 요리사·칼럼니스트로 『레드쿡 다이어리』 『레드 캣 오픈키친』 등 요리 관련 TV 프로를 진행했다. 『육감유혹』 『밥시』 등을 썼다.

백지원 세계음식 연구가로 음식 관련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모락모락 밥한그릇』 『배우고 싶은 동남아요리 한 가지』 등을 펴냈다.

신효섭블로그 ‘블링블링 신군 쿠킹클래스 (blog.naver.com/ssambear)’ 운영자. 동양매직쿠킹클래스·이마트 등에서 가정 요리를 가르치고 있다.

이진호 블로그 ‘재즈요리사의 쿠킨 재즈(blog.daum.net/jazz4lovers)’ 운영자. 푸드 스타일리스트이자 셰프로 활동하며 『소울 키친』을 썼다.



Win 이상학 셰프 실험성보다 현실성

심사단에서 격론이 벌어졌다. 메인과 코스의 조화에서는 두 셰프가 비겼고, 애피타이저는 이 셰프가 4표 중 4표로, 디저트에서는 정 셰프가 4표 중 3표를 얻어 각각 이겼다. 이 셰프는 정상들의 상에 곧바로 올릴 수 있는 ‘현실적인 요리’를 냈고 정 셰프는 한식을 다양하게 응용한 ‘실험적 요리’를 냈다. 토론이 벌어졌다. “창의성과 실험정신을 높이 사야 한다”는 쪽과 “격식에 맞는 음식을 만드는 것도 실력”이라는 쪽으로 갈려 팽팽하게 맞섰다. 결국 총점으로 결론을 내리기로 하고 애피타이저에서 1표를 더 얻은 이 셰프를 승자로 결정했다.

●애피타이저 이 셰프의 ‘해산물 샐러드와 동치미 젤리’는 신선한 허브와 쫄깃한 해산물, 모두를 아우르는 동치미의 은은한 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재료 자체의 맛이 각각 살아서 조화를 이룬 점이 훌륭했다. 또 외국의 정상에게 낯선 음식이라는 선입관을 주지 않으면서 한국적인 느낌을 잘 가미했다. 정 셰프의 ‘바닷가재 요리와 막걸리 셔벗’은 맛이 일품이었다. 하지만 한국음식의 느낌이 너무 강해 정상의 만찬엔 지나치다는 평을 받았다.

●메인 정 셰프의 소금구이는 어린 연잎의 쌉쌀한 맛과 어우러져 한층 맛을 끌어올렸다. 스파게티로 지게를 만들어 한국의 시골에 온 듯한 분위기를 냈다. 이 셰프의 메인은 된장 소스 향이 강하지 않으면서 은은히 풍겼다.

●디저트 정 셰프의 고르곤졸라 치즈 아이스크림에 ‘최고의 맛’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매자과에 아카시아 꿀을 소스로 사용하고, 송로버섯과 고르곤졸라 맛의 어우러짐이 디저트가 아닌 하나의 요리를 만들어냈다는 평이었다. 이 셰프의 스위스 머랭은 달콤한 디저트 본연의 역할을 잘 수행했고 계란 흰자로 완벽한 물방울 모양을 재현해 기술력에서 최고라는 평을 받았다.

●코스의 조화 이 셰프의 코스는 정상들이 부담스러워 하지 않을 만한 ‘절제된 한식’을 잘 보여줬다는 평이었다. 90%는 양식이되, 10% 정도 한식의 느낌을 적절히 가미해 마치 실전 요리를 연상케 하는 세련된 코스가 인상적이었다. 정 셰프의 코스는 다소 강한 한국적인 맛에서 시작했지만 메인·디저트로 갈수록 세계로 확장됐다는 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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