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슬리피…' 팀 버튼 감독 특유의 기괴함 가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8면

'배트맨' 에서 악마의 웃음을 지어대던 조커(잭 니콜슨)를 창조하고 '가위손' 에서 음산한 고딕풍의 우화세계를 창안했던 팀 버튼 감독. '화성침공' 에서 마음껏 발양했던 만화적 상상력처럼 그는 대중문화적인 코드가 현실 세계와 인간을 읽어내는 데 유용한 장치라고 믿는다.

자신이 영화화하기도 했던 B급 컬트영화 감독인 '에드 우드' 처럼 질서잡히고 가지런한 형식보다는 과장되고 황당무계한 영상이 진실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다.

'그로테스크의 미학자' 버튼이 이번에는 '목이 잘린 인간' 이라는 기괴미(奇怪美)에 끌렸다.

'세기말' 적인 공포와 불안의 공기가 감싸고 있던 1799년. 뉴욕 북쪽에 위치한 '슬리피 할로우' 라는 외진 마을에서 연쇄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공교롭게도 희생자들은 모두 목이 잘려 살해됐다.

사건 현장에 파견된 젊은 수사관 크레인(조니 뎁)은 이성과 과학적 판단이면 세상에서 해결불가능한 문제란 없다고 믿는 이성주의자. 현지에서 크레인이 들은 얘기는 황당했다.

20년전 미국 독립전쟁때 진압군에 속했던 독일인 용병이 '호스맨(Horse Man)' 이라는 목이 없는 귀신으로 살아나 사람들의 목을 베어간다는 것이었다.

희생자는 늘어 갔고 범인으로 믿었던 인물도 살해를 당한다.

한편 크레인은 용의자의 딸 카트리나(크리스티나 리치)와 사랑에 빠지면서 혼돈상태가 된다.

팀 버튼 영화의 매력 중 하나는 '잔혹한 유머' 에 있다.

영화내내 수십개의 잘린 목들이 나뒹굴지만 비명 보다는 묘한 '악마적 웃음' 에 유혹되는 건 확실히 그만의 재치에 연유한다.

그는 또 검정색과 흰색의 단색을 부각함으로써 피가 튀는 끔찍한 장면들을 완화시키는 예의 '엉큼함' 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가위손' '에드 우드' 에 이어 세번째 버튼 감독의 영화에 출연한 조니 뎁은' '촐랑거린다' 싶을 만큼 ' 좀 떠 있다.

침잠된 내면 연기를 좋아했던 그의 팬이라면 아쉬움이 남을 것 같다.

아무튼 현실세계의 불합리와 모순을 뚫어보는 버튼 감독은 '이성과 과학' 만으로는 해석될 수 없는 삶의 비의(秘儀)가 우리 주변에 늘려 있다는 점을 '슬리피 할로우' 를 통해 다시 한번 제기했다.

이영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