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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눈] 한 예술가의 부활 꿈꾸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함박눈을 머리에 가득 이고 예술의전당 미술관에 갔다.

'나혜석의 생애와 그림전' (2월7일까지)을 보기 위해서였다.

1920~30년대 최고의 여성으로 흠모를 받았으나 혼외정사로 가족은 물론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행려병자로 생을 마감해 시신조차 거둔 이가 없었다는 '드라마 같은 인생' 으로 널리 알려진 나혜석(羅蕙錫)을 '화가' 로 재조명하는 자리였다.

뛰어난 예술성에도 불구하고 '로댕의 애인' 으로만 역사에 남겨졌던 카미유 클로델이 마침내 80년대 중반 이후 활발한 재평가 작업으로 역량을 인정받았듯 나혜석도 드디어 '비련의 주인공' 이란 꼬리표를 떼어내 버리고 국내 첫 개인전 개최자요, 아홉 차례나 조선미전에 출품했던 화가로서 '당당한' 면모를 드러내는가 싶었다.

나혜석 탐구는 페미니즘 물결에 힘입어 80년대 후반에 활기를 띠어 95년엔 나혜석기념사업회가 조직됐고 99년엔 나혜석 바로 알기 제1회 국제심포지엄이 열리면서 수원에는 나혜석 거리도 생겼다.

뿐인가.

문화관광부에서는 올 2월의 문화인물로 나혜석을 선정했다.

과연 나혜석은 카미유 클로델처럼 예술세계에서 부활하는 것일까.

눈발이 성성 날리는데도 전시장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방학이면 과제를 하러온 학생들로 북적이는게 일반 전시장의 풍경인데도 나혜석전은 그렇지가 않았다.

중년을 넘어선 이들이 드문드문 눈에 띄는가 하면 20대 여성들도 많았다.

그 가운데엔 기억의 편린을 좇아 혼자서 전시장을 찾은 이들도 적지 않았다.

나혜석의 가계도로부터 시작된 전시장엔 평균 99점으로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성적표며 김우영과의 결혼식 및 세계일주기념사진, 승려복을 입은 모습에 행려병자로 사망했음을 게재한 관보 등 30여점의 자료가 파노라마처럼 전시돼 그의 실낱 같은 흔적을 되살려내고 있었다.

그러나 '생애' 의 복원과는 달리 '화가' 의 복원은 너무나 빈한했다.

넓은 전시장에 걸린 원작 수는 간신히 열손가락을 채웠다.

유화 25점.판화 3점.삽화 11점은 겨우 사진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혼한 후 혼신의 힘을 다해 마련한 재기전에도 1백여점을 선보였으니 그가 평생 그린 작품은 줄잡아 3백~4백여점이 될 것이라고 미술사가들은 말한다.

그러나 지난해 10월말부터 전시 직전까지 계속됐던 예술의전당측의 원작 찾기 실적은 미미했다.

세상에 알려진 몇 안되는 작품마저도 최근 십여년 동안 몇번씩 새 주인을 맞다가 끝내 행방이 묘연해져버린 까닭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나혜석은 새 면모를 드러냈다.

명절이 명절인 것은 남성들에게서일 뿐, 여성에게는 더욱 고단하기만 한 날임을 고발한 '섣달대목' , 자신의 일이 있어도 집안일을 면제받을 수 없는 여성들의 이중고를 드러낸 '김일엽(金一葉)의 하루' , 노동의 강인한 아름다움이 넘쳐나는 '개척자' . 불과 십수년 전 우리 사회에 등장했던 '민중미술' 과 '여성미술' 이 80년 전 나혜석의 손끝에서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한 작가를 평가하려면 많은 작품이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 실체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열점의 원작은 '화가 나혜석' 을 재평가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새롭게 드러나는 나혜석의 편린을 보며 공개된 작품이 적은 것이 더욱 안타까웠다.

나혜석에 대한 재평가작업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지금, 주인이 누구이든 간에 그의 작품은 더이상 '개인의 소유물' 이거나 '개인의 재산' 으로 머물러서는 안된다.

나혜석 재평가전이 열린다는 매스컴 보도를 보고 작품 소장 사실을 주최측에 알려와 뒤늦게 전시회에 합류했다는 '해인사 풍경' (37년작)의 앞에 서자 이번 전시회에도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유족 보유의 미공개작품이 더욱 궁금해졌다.

나혜석이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52년. 그가 살아 숨쉬던 그 시간만큼 지하에 묻힌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원하지 않았던 이혼을 해야만 했던 어머니와 그 품에서 떼밀려난 세살배기 꼬마 아들간의 화해는 이뤄지지 않은 듯하다.

'어머니라기보다 한 여성으로 이해한다' 는 그에게 예술가로 부활을 꿈꾸는 나혜석이 어머니로 환생하기엔 아직도 세월이 짧은 것일까.

홍은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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