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美 안보 우산서 벗어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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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새 미.일 안보조약이 19일 체결 40돌을 맞았다. 미국이 대소(對蘇)봉쇄의 한 축으로 삼았던 미.일 안보체제는 이제 극동 유사시에도 일본의 방위력을 활용할 수 있도록 발전했다. 양국이 새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을 마련했기 때문이다.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회원국을 늘리고 임무를 확대하면서 동맹을 강화해왔지만 미.일동맹은 일본 군사력의 굴레를 벗기는 법령 정비를 통해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주도의 동맹에 대해 일본 관료.정치인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동맹은 일본의 군사적인 홀로서기를 막으려는 미국의 견제장치라는 '얘기마저 쏟아져 나온다. 과거 일부 극우인사가 "NO라고 할 수 있는 일본" 을 외칠 때보다 훨씬 더 똘똘 뭉쳐 있다. 새 조류다. 주장이다.

지난해 9월 대장성은 하나의 성역을 깨뜨렸다. 주일 미군시설에 예산담당관을 보내 처음으로 주둔경비 지원금 내역을 꼬치꼬치 따졌다.지금까지는 "외교문제가 된다" 는 이유로 손도 대지 못하던 분야였다. 예산담당관은 전구.배선.양탄자 비용까지 조사했다. "미.일의 재정상황이 역전됐는데도 일본의 호황때 짠 지원예산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는 대장성 수뇌부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대장성은 올해 주둔경비 지원 예산을 지난해보다 25억엔 줄인 2천6백억엔으로 잡았다.

"할 말은 한다" 는 대장성의 입장에 외무성과 방위청도 동조하고 있다.전례없던 일이다. 다나카 노부아키(田中信明)샌프란시스코 총영사는 "미국이 그려온 일본의 모습을 이제는 일본 스스로 그려야 한다" 고 말했다. 야나이 슌지(柳井俊二)주미대사도 부임 전 한 잡지와의 회견에서 "일본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고 말했다. '미국 콤플렉스' 를 벗어던지려는 자기최면 같기도 하다. 새 조류는 전방위 외교로 구체화되고 있다. 대미 일변도를 벗겠다는 것이다. 동남아에선 미국의 인권외교와 다른 실리외교를, 중앙아시아에서는 독자적인 '실크로드 경제외교' 를 펴고 있다. 한.중과의 관계 개선을 주창한 총리자문기관의 최근 보고서도 같은 맥락이다.

정치인도 시시비비를 가리고 나섰다. 오키나와(沖繩)현 후텐마(普天間)비행장의 대체기지 사용기간을 둘러싸고 소장파 정치인들은 미국에 무턱대고 굽신거리지 말라고 요구한다. 언론 논조도 주목거리다.아사히(朝日)신문은 19일자 사설에서 "지금 일본에 필요한 것은 미국에 할 말을 솔직하게 하는 용기" 라며 "마찰을 두려워하지 말고 할 말을 할 때 동반자 관계는 깊어진다" 고 주장했다.

대미 추종노선 비판은 '대국주의' 를 추구하는 한 증거일 수도 있다. 일본에서 움트기 시작한 새 조류가 미.일동맹을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지 주목된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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