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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재의 시시각각

MB와 오바마, 누가 호걸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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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어제와 그제는 오바마와 이명박 대통령이 숙원사업에 차례로 시동을 건 날이다. 그제 미국에선 오바마의 건강보험 개혁안이 하원을 통과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전 국민 건강보험’을 공약으로 내건 지 근 100년 만이다. 그런가 하면 어제 한국에선 4대 강 살리기 공사가 본격 시작됐다. 출발을 같이한 것 외에도 두 정상의 숙원사업은 여러 가지가 닮은꼴이다.

우선 대통령이 밀어붙일수록 지지율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오바마의 지지율은 올 7월 처음으로 50% 밑으로 추락했다. 9월엔 최저치인 46%까지 밀렸다. 오바마가 8월 한 달 ‘타운홀 미팅(주민과의 대화)’을 통해 개혁의 목소리를 높이자 반대 목소리도 급속히 커졌기 때문이다. 집권 초 80%에 달했던 MB의 지지율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대운하나 4대 강 얘기가 나올 때마다 뚝뚝 떨어졌다.

둘째,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굳게 믿고 있다. MB는 4대 강을 “경제를 살리면서 기후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녹색성장의 대표적 사례”라고 정의한다. 두 달 전 뉴욕 기후변화회의 때는 『물의 미래』란 책을 들고 갔다. 프랑스의 석학 에릭 오르세나가 쓴 이 책의 메시지는 이렇다. ‘21세기는 물의 시대다. 현재 지구 인구 6명 중 1명은 물이 없다. 지금 물을 준비하지 않는 나라는 미래가 없다’. MB는 그 책을 읽고 소신을 더 다졌을 것이다. 오바마는 “의료보험 개혁은 비용이 아니고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말한다. 의료 개혁이 의료 산업과 국가 경쟁력을 더 키운다는 것이다.

셋째, 돈이 많이 드는데 쓸 돈이 없어 쪼들린다. 오바마의 개혁에는 10년간 약 1조2000억 달러의 돈이 든다.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기로 했다. 지난해부터 금융위기를 막느라 2조 달러가 넘는 돈을 쏟아 붓는 바람에 여력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4대 강에는 2012년까지 22조원 넘는 돈이 들어간다. 우리 역시 올해 50조원이 넘는 돈을 쓴 터라 여유가 없다. 궁여지책으로 수자원공사를 동원하고 부자들에 대해 깎아주기로 했던 세금을 안 깎기로 한 것도 그래서다.

넷째, 시기가 좋지 않다. 지금쯤은 경제가 살아나야 숙원사업도 힘을 받을 수 있는데 되레 반대다. 지난주 미국의 실업률은 10%가 넘어 26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고용이 줄면 소비도 준다. 소비는 미국 경제의 70%를 차지한다. 경제가 살아나는 데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미 정부 일각에서 당장 2차 경기부양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이렇게 되면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도 어려워질 수 있다.

여기까지는 닮은꼴이지만 앞으로는 어떨까. 오바마의 숙원사업은 상원 통과부터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미룰 수도 없다. 훗날을 기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에 2차 경기부양을 위해 돈을 더 써야 하는 상황이라도 닥치면 그야말로 최악이다. 중간에 좌초할 수도 있다. 그에 비하면 4대 강은 여지가 있다. 속도 조절이 가능하다. 미국이 2차 경기부양에 나서면 우리도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때를 대비해 나랏돈을 더 아껴쓸 필요가 있다. 4대 강은 중요한 사업이지만 당장 해치워야 하는 건 아니다. 매년 6조~7조원씩 3년에 쏟아 붓지 말고 조금씩 길게 가도 된다. 10년 후 완성을 봤다고 숙원사업의 공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때가 아니면 돌아갈 줄도 알아야 호걸이라 했다. 중요한 건 공을 이루는 것이지, 속도가 아니다.

이정재 중앙SUNDAY 경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