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위원 긴급진단] 흔들리는 금융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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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연초부터 금융시장이 뒤뚱거리고 있다. 지난해 11월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던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안정세를 보이던 금리도 흔들리고 있다. 갈수록 확산되고 잇는 금융불안 심리 탓이다. 과연 금융불안 요인의 실체가 무엇인지, 그것이 금융시장의 교란과 금리인상으로 이어질 것인지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분석해본다.

◇ 불안1〓2월 금융대란설

대우 관련 채권을 95% 환매해 주는 2월 8일 이후 대우채권이 포함된 23조원 규모의 수익증권에 대한 환매요청이 무더기로 들어오면 투신사들의 자금이 달려 금융혼란이 온다는 얘기다.

이상재 현대증권 리서치조사팀장은 "주식형.하이일드펀드 등 새로운 주식증권으로 돌리지 않고 지금까지 환매하지 않고 있는 자금은 투신권에서 빠져나간다고 봐야 한다" 며 대량환매 사태를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생각은 다르다. 돈으로 막으면 된다는 것이다. "금리확정부 수익증권(5조원)허용, 증권금융 자금지원(2조원), 채권시장안정기금(4조원).자산관리공사(3조원)의 채권매입 등 14조원 규모의 대책이면 충분히 금리를 안정시킬 수 있다" 는 것이 김석동 금융감독위원회 법규총괄과장의 바람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박사도 "지난해 11월이 더 심각했는데 문제없이 넘기지 않았는가" 라고 반문하면서, "환매가 있다고 하더라도 투신권에서 이탈하는 자금의 규모는 크지 않을 것" 이라고 내다봤다.

◇ 불안2〓대우문제

아직까지 '완전한 해결' 을 보지 못하는 대우문제가 여전히 시장을 불안케 한다는 것이다. 대우 해외채권단이 손실부담에 대해 합의를 질질 끌어 결국 국내채권단이 ㈜대우를 법정관리로 넘기면 시장이 또 한번 출렁거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경련 유한수 전무는 "대우문제는 이미 시장에 반영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교란을 야기하지 않을 것" 이라며 대우문제에 의한 금융불안설을 일축한다.

LG경제연구소 이윤호 원장도 "대우문제는 이제 손실분담과 관련해 국내외 채권단 사이에 얼마나 유리하게 합의하느냐의 문제만 남아있을 뿐, 그 자체는 더이상 경제에 충격을 줄 사안이 아니다" 고 분석하고 있다.

또 권 박사는 "원체 실물경기가 강해져서 설사 대우문제로 금융불안이 다시 불거진다 하더라도 충분히 버텨낼 수 있다" 고 말했다. 또 "협력업체 관련대책도 그동안 여러번 '도상훈련' 을 마친 사안이라 '시장에 대한' 충격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 이라는 게 관련자들의 전망이다.

◇ 불안3〓채권시장

대형 투신사들의 부실이 여전하고, 채권시장안정기금을 시장으로 되돌리는 과정에서 금리가 불안해 진다는 것이다.

오는 7월로 예정된 시가평가제 실시도 불안요인이다.정부는 일단 증자에 적극 참여해서라도 조속히 대형투신사의 경영을 정상화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금융연구원 최공필 박사는 "기존 부실이 너무 심각할 뿐만 아니라 걸핏하면 남의 탓으로 돌리는 현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가 남아있는 한 자금지원을 해준들 투신사의 경영정상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고 주장했다.

정부 당국자는 채권시장안정기금과 관련해 "2월초를 넘기고 나면 금융기관별로 나누되 금리가 안정될 때까지는 채권을 매각하지 않기로 금융기관들간의 합의가 있다" 고 전했다.

이에 대해 崔박사는 "안정기금의 채권매각을 억제하는 것 자체가 채권시장 정상화에 걸림돌" 이라며 "단기적으로 금리가 불안해지더라도 채권시장을 시장규율에 맡기는 것이 정도(正道)" 라고 지적한다.

채권의 시가평가제 실시에 대해 "유통시장에 나와있는 약 200조원의 채권 중에 7월에 신규로 시가평가제의 적용을 받는 것은 5분의 1 밖에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채권시장안정기금의 해체와 완전한 시가평가제 운용이 오히려 채권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 는 것이 정부 담당자의 설명이다.

◇ 불안4〓물가

경기활황세가 이어지면서 물가상승압력이 고개를 들고, 특히 하반기에는 신규투자에 대한 자금수요가 늘어 금리가 오른다는 것이다.

權박사는 "하반기에 물가가 오를 가능성은 있으나 금리안정을 흔들 정도가 아니다" 며 10% 내외의 금리를 전망하고 있고, 金과장은 "안정적인 물가기조를 감안할 때 마찰적 요인으로 금리가 오르면 통화조절을 통해 금리를 안정시킬 것" 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崔박사는 "물가상승보다 물가상승 기대심리가 더 문제" 라며, "단기금리 인상이 어렵다면 적어도 '물가가 올라가면 단기금리를 올릴 수 있다' 는 의지를 표명함으로써 물가안정정책에 대한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 고 강변한다.

자금수요에 대해 권오규 재경부 경제정책국장은 "지난해 기업들이 증자 등 직접금융으로 조달한 자금이 41조원에 이르렀다" 며 "자금수요가 늘어난다 하더라도 은행대출 등 간접금융을 통한 자금수요는 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금리상승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 이라고 자신한다.

◇ 불안5〓미국 증시

물가상승 압력 때문에 미국이 금리를 대폭 올릴 것이고, 따라서 증시와 경기가 동시에 내려앉는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기하락은 한국 수출세의 약화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요즘처럼 미국 증시의 움직임이 한국에서 증폭돼 나타나는 상황에서 미국의 주가하락은 한국 주가의 폭락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최근 발표된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0.2%에 머물러 기껏 금리를 올려야 0.25%포인트 정도밖에 올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지고 있다.

미국 MIT대 폴 크루그먼 교수도 NHK 특집프로에서 '인플레가 현시화될 때까지는 금리인상을 억제함으로써 안정속의 고성장을 이룩한' 그린스펀 연방준비위(FRB)의장의 정책을 높이 평가하면서, "정보기술(IT)혁명이 경제활성화를 지속해 미국은 향후 10년 내지 15년동안 현재와 같은 호황국면을 지속할 것" 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나라 안팎으로 금융시장을 불안케 할 수 있는 요인들이 널려 있지만 그 대부분이 가시화될 가능성이 작거나 우리 경제의 적응능력으로 무난히 해소할 수 있는 것들로 판단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금융교란 요인들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대비책으로 금융시장 참여자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는 '집단적 위기심리' 를 떨쳐버리는 것이다.

지난 2년동안 걸핏하면 금융위기설이 터져나왔지만 그 불안을 얘기하는 순간부터 불안요인들이 해소되기 시작했고, 그 결과 금융대란이 한번도 불거지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그 '시장의 능력' 에 다시 한번 기대해 볼 시점이라는 얘기다.

김정수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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