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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전망대] '자살하는 사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중국 속담에 '소년은 슬픔의 맛을 모른다' 는 말이 있다. 그러나 요즘의 중국 젊은이들은 슬픔과 고뇌 속에서 살고 있다.

지난달 장시(江西)성 펀이(分宜)현에서 열다섯살짜리 여중생이 극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친구로부터 "네 영어 점수는 48점밖에 안돼" 라고 놀림당한 직후다.

그러나 교사의 실수로 점수가 실제보다 21점이나 낮게 나온 것이다. 부모는 교사를 고소했다. 중국 최고의 명문인 베이징(北京)대에서도 며칠 전 참변이 일어났다.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32세의 청년이 27세의 과정 동기생에게 둔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뒤 5층 기숙사 난간에서 몸을 던졌다. 나이 어린 동기생이 자기보다 성적이 뛰어나다는 이유였다. 중국 젊은이들은 버들가지처럼 연약하다. 옛날의 억센 홍위병(紅衛兵)이나 중국인 특유의 만만디(慢慢的)정신을 연상해선 곤란하다.

베이징의대 심리학과 후페이청(胡佩誠)교수는 " '한자녀 낳기 운동' 으로 홀로 자란 아이들이 많은 게 문제" 라고 지적한다.

'샤오황디(小皇帝)' 라는 사회적 용어를 낳을 만큼 온실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학교나 사회의 '혹한' 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부모와의 거리감도 문제다. 최근 톈진(天津)시 부녀자연맹(婦聯)이 조사한 결과 톈진 학생들의 '부모와의 거리감.불신지수' 는 90으로 나타났다. 학생들의 90% 정도가 부모와의 대화나 교류를 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연맹측은 "철밥그릇(鐵飯碗)은 깨졌는데 경쟁만 나날이 치열해져가는 상황, 이것이 부모들의 시선을 아이들로부터 빼앗아간 요인" 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먹고살기에 급급하다보니 자식에게 신경쓸 틈이 없었다는 얘기다.

난징(南京)에 위치한 '위기처리센터' 는 12일 "중국에선 매년 70만명 정도가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이 가운데 자살로 인한 사망자가 약 20만명이며 사고사 원인 1위를 차지했다" 고 발표했다.

지난해 중국인의 자살률은 세계 최고였다. 자살한 사람 열에 여덟, 아홉(85%)은 15~34세의 젊은이다.

난징위기처리센터는 "중국도 자살 방지를 위한 긴급구호체계를 도입해야 할 때가 됐다" 고 강조했다. 자살이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려운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대두한 만큼 외국처럼 경찰.보건.교육.주부협회.시민단체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자살예방기구를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 중국에서는 난징을 비롯, 광저우(廣州).톈진.창사(長沙).우한(武漢)에 자살예방센터가 있다. 그러나 단순히 문제학생을 상담하는 수준에 불과할 뿐 자살방지를 위한 종합적인 사업은 손도 대지 못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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