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 여론조사 실태] 교묘한 자기 홍보 수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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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각종 파행상을 낳고 있는 자동응답시스템(ARS)여론조사의 후유증은 여야 각 정당이 철학과 이념보다 당선 가능성을 최고 기준으로 삼으면서 벌어지는 과열 증후군이다.

대폭 물갈이와 치열한 공천경쟁의 분위기 속에 중앙당이 여론조사를 하기 전에 지명도를 높여 놓자는 출마 예정자들의 다급한 마음과 선관위 단속의 허점이 맞물려 나타난 현상이다.

다양한 실태를 유형별로 정리해 본다.

◇ 교묘한 자기 홍보.상대 비방〓서울 마포을 지역에서는 최근 "××× 후보를 아십니까" 라는 전화가 걸려온 뒤 모른다고 하면 다시 "김현철 비리를 폭로해 자기 몸을 던져 국가를 구하려 했던 청문회 스타 ×××를 아십니까" 라는 ARS 조사를 접한 주민들의 신고가 선관위에 접수됐다.

경기 북부에서는 현역 의원의 도로.교량 건설 등 지역구 사업을 열거한 뒤 "이같은 업적을 쌓은 이 의원이 보다 큰 지역 일꾼으로 봉사하기 위해 기회를 주시렵니까" 라는 지지 유도성 여론조사가 행해지고 있다.

인천지역의 한 방송인 출신 출마 예정자는 "인기 TV프로그램에 장기간 출연했던 ×××씨를 아십니까" 라는 인지도 높이기 ARS 조사가 선관위에 신고된 상황이다.

고양 일산의 한 여권 출마 예정자는 동(洞)별 애로사항을 일일이 물어보는 신종 수법을 사용했다.

"이같은 사업을 해줄 곳은 여당측이라고 생각하느냐" 는 질문이 자연스레 이어진다.

서울 강북지역의 한 야당 지구당은 최근 당원들에게 ARS 전화가 걸려오면 상대당 후보 중 가장 경쟁력이 약한 특정 후보를 선택하라는 '역공(逆攻)지침' 까지 줬다.

◇ ARS 홍수〓ARS 조사만을 전문적으로 맡고 있는 Y리서치사의 한 관계자는 "지난 15대 총선에 비해 네배 가까이 고객 수가 늘어났다" 며 "최근들어 6백회선의 전화선을 풀가동해야 할 정도로 정당.출마자들의 조사 의뢰가 폭증하고 있다" 고 밝혔다.

서울 마포을 지역의 경우 지난해 11월부터 최근까지 민주당측의 송자(宋梓)명지대 총장.이성재(李聖宰)의원.황수관(黃樹寬)연세대 교수.김한길 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손석희(孫石熙)아나운서와 한나라당 박주천 의원.김충현(金忠賢)국민회의 위원장을 조합한 수십차례의 릴레이 ARS 조사가 난무하고 있다.

"생업에 지장을 받을 정도" 라는 주민들의 항의 전화가 각 정당 지구당에 쏟아지고 있다.

◇ 조사의 정확성〓서울 성수동의 李모(36.회사원)씨는 최근 "여권 출마 예정자인 ×××씨를 알고 있느냐" 는 전화를 6세된 딸이 받아 장난삼아 버튼을 누르고 있는 현장을 목격했다.

얼마 뒤 이 예정자는 자신의 지지도가 현역 야당 의원에게 오차 범위 내로 육박했다는 자료를 당내에 배포했다.

서울 연희동(서대문갑구)에 거주하는 金모(41.국회직원)씨는 최근 자신의 집에 마포지역 ARS 여론조사가 걸려온 데 대해 실소를 금치 못했다.

리서치&리서치사의 노규형(盧圭亨)대표는 "이같은 탈법성 조사는 대부분 공신력있는 여론조사 기관을 사칭해 이뤄지고 있다" 고 말했다.

▶ ARS(Automatic Response System)여론조사란〓전화를 이용, 미리 녹음된 설문내용을 들려주며 특정 주제에 대한 의견을 물어 답변자의 성향을 분석하는 조사

최훈.이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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