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벽 붕괴 20년 베를린, “자유·인권 넘치지만 일자리가 항상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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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동독 주민의 절대적인 생활수준은 크게 향상됐다. 하지만 서쪽과의 상대적으로 큰 격차 극복은 가까운 장래에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DIW연구소 클라우스 짐머만 소장은 “전면적인 평등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눈부신 성장=비슷한 시기에 민주화된 다른 동유럽 국가들에 비해 동독 지역의 성장은 눈부셨다. 1991년 서독의 33% 수준에 불과했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현재는 70%로 늘었다고 쾰른에 본부를 둔 IW연구소 미하엘 휘터 소장은 밝혔다.

92년 동독 산업생산은 전체 독일의 3.4%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10%로 늘었다. 수출에서 동독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사이 3배나 증가해 33%로 올라갔다. 평균 수명도 크게 늘었다. 막스 플랑크 연구소에 따르면 동독인은 통일 이전보다 평균 6년이나 더 오래 산다. 여성의 경우 82세로 서독과 똑같다. 무엇보다 높은 수준의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어서다.

초고속 인터넷망이나 고속도로는 동독 지역이 오히려 서독 지역보다 앞선다는 평가다. 자연환경 보존상태도 동독이 오히려 더 나아 희귀·야생 동식물이 서독 지역보다 더 많이 서식하고 있다. 서독 출신인 빈프리트 슐츠(66)는 “사람의 손이 닿지 않고 동식물로 가득 찬 동독의 아름다운 자연을 볼 수 있게 됐다”며 “독일 북부 오스트제의 뤼겐섬이나 우제돔 같은 아름다운 섬들과 괴를리츠 같은 멋진 동독 도시를 여행할 수 있게 돼 즐겁다”고 말했다.

◆높은 실업률 해결이 관건=이러한 눈부신 성과에도 불구하고 동서독 간 경제적 평등은 쉽게 달성되기 어려워 보인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실업률이다. 동독의 2008년 실업률은 14.7%로 서독(7.2%)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일자리를 구하기가 그만큼 더 힘들다는 것이다. 동독에서 성장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실업률이 서독의 두 배나 되는 것이 문제”라며 20년 전에 세운 경제 평등 목표가 도달하지 못했음을 인정했다.

지금까지 들어간 소위 ‘통일 비용’은 1조2000억~1조6000억 유로(약 2085조~2780조원)나 된다. 천문학적이다. 기업에 대한 직접 지원에서부터 인프라 재건, 1600만 동독인들에 대한 복지 혜택에 이르기까지 돈을 필요로 하는 곳이 너무 많다. 동독 할레에 본부를 둔 IWH 경제연구소의 우도 루트비히는 “한국의 친구들이 경제통일에 대해 물어오면 독일의 사례를 연구해서 우리가 한 대로 하지 말도록 권고한다”고 말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최근 전했다.

◆통일 실험은 여전히 진행 중=동방정책으로 유명한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는 장벽 붕괴 당시 “함께 속해 있는 것을 함께 발전시키자”고 역설했다. 그러나 전환기를 맞은 지 2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동서 독일 간 화학적 통합은 길이 멀어 보인다. 이는 동서독 사람들 간 의식의 괴리에서 확인된다. 60%의 오시(동독 주민)는 스스로 노동자 또는 하층 계층에 속해 있다고 느꼈다. 반면 이렇게 생각하는 베시(서독 주민)는 34%에 불과했다.

역사학자 아르눌프 바링은 “동독에는 놀랄 만큼 서독에 대한 적대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동독 출신인 마리아 코흐(29)는 “젊은 세대에서는 과거의 정치적 장벽과 연관된 장벽은 없다. 하지만 일종의 지역적 장벽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20년 전 베를린발 역사의 지각변동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베를린=한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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