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학살·유혈 독립투쟁 등 인도네시아 와히드 최대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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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압두르라만 와히드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집권 이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

서쪽 아치에주(州)의 분리주의 움직임이 여전한 데다 말루쿠섬 내 종교학살, 동쪽 끝 오지 이리안 자야주(州)의 '분리독립일 선포' 까지 겹치면서 나라가 갈가리 쪼개질 위험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슬람교도들과 대학생 수만명은 연일 수도 자카르타에서 집회를 갖고 종교학살을 일삼는 기독교도들에 대한 '지하드(聖戰)' 를 선포한 뒤 와히드.메가와티 정.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고 나섰다.

특히 말루쿠지역의 만행이 드러나면서 이슬람교도들은 "전사(戰士)를 파견하겠다" 며 내전(內戰)도 불사하겠다는 태세다.

◇ 말루쿠 학살〓말루쿠제도 북쪽 플라우 하마헤라섬 내 갈레라시에서 시체 수거작업에 종사해온 이슬람교 구호단체 '무르살 아말 토마골라' 의 한 조직원은 11일 "불에 그을리고 부패한 시체 수백구를 불도저로 밀어 집단 매장했다" 고 외신기자들에게 밝혔다.

그는 "한번 (시체수습에)동원되고 나면 며칠씩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 며 참담한 심경을 털어놨다.

갈레라지역 내 경계업무에 투입된 한 군인도 "대부분의 시체는 모스크(이슬람교 사원) 안에서 발견됐다. 심하게 훼손된 점으로 보아 잔인하게 살해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 말했다.

영국 BBC방송은 "주도 암본에서도 이슬람교 난민 수천명이 피난처를 찾아 거리를 헤매고 있다" 고 보도하고 "말루쿠지역 전체에서 학살.폭동이 진행 중" 이라고 전했다.

위도도 아지 수집토 군 총사령관은 10일 직접 북부 테르나테지역에서 암본까지 현장 시찰에 나서는 한편 해군 경비정을 동원해 말루쿠해협.세람해(海).반다해(海) 등 군도 전 해역에 걸쳐 경계업무를 명령했다.

난민들의 피난을 돕고, 폭도들의 섬간 이동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한 구호대원은 "군 투입에도 불구하고 폭동은 전체 말루쿠, 나아가 인근 술라웨시지역까지 확대되고 있다" 고 우려했다.

◇ 이라안 자야〓분리독립운동 지도자인 톰 베아날 사령관은 11일 "파푸아(이리안 자야)는 2003년까지 완전 독립을 쟁취할 것" 이라고 선언했다.

베아날은 자카르타에서 외신기자들에게 "올해말 전체 분리독립단체들이 참가하는 총회를 주도 자야푸라에서 소집해 독립운동전략을 구체적으로 수립할 것" 이며 "자카르타 정부가 대화를 통한 독립을 거부한다면 동티모르처럼 '피를 통한 독립' 도 주저하지 않을 것" 이라고 말했다.

베아날은 "자카르타 당국은 파푸아의 독립 움직임을 저지하려고 인도네시아인 수천명을 파푸아로 파견하고 있다" 고 비난하고 "파푸아인들은 1963년 유엔 교섭에 의한 '파푸아의 인도네시아 합병' 이 원인무효임을 선언한다" 고 밝혔다.

◇ 아치에〓분리독립운동이 완전 조직화 단계로 접어들었다. 최근 1백만명의 아치에인이 참가하는 '아치에의 독립을 위한 전사들의 총회' 를 조직했던 아치에독립투표센터(CAR)의 모하마드 나자르 의장은 11일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전체 아치에인들의 독립운동 열기를 수렴할 통합단체를 구성했다" 고 밝히고 "아치에독립은 시간문제일 뿐" 이라고 선언했다.

나자르 의장은 "아치에인들은 물론 해외로부터의 지원이 나날이 늘어난다" 면서 "자카르타 정부의 의지와 관계없이 아치에인 스스로 독립정부를 꾸릴 충분한 준비가 돼 있다" 고 말했다.

홍콩〓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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