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구름처럼 몰린 정치지망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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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민정당이 출범할 때 사람들이 안오면 어떡하나 걱정했어요. 결과를 보니 내가 정치를 너무 몰랐어. 우리나라 사람은 정치에 아주 관심이 많아요. 전을 펴놓으니 구름같이 모여 솎아내기 바빴어요. "

박정희(朴正熙)시해사건, 12.12사태,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을 거쳐 5공화국 군부독재를 출범시킨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은 여당인 민정당을 급조하면서 기존 정치인.지식인들의 광범위한 반발과 냉소를 사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던 듯하다.

그러나 그런 우려는 자신의 고백대로 기우(杞憂)에 지나지 않았다. 全씨가 "의회에 진출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정치풍토가 흐려진다" 고 한심해했을 정도로 군화발 아래서도 여당지향 정치지망생은 흘러넘쳤던 것이다.

20년이 지난 지금, 나라의 민주화 정도나 권력행사 방식이 판이하게 달라진 만큼 집권여당의 공천작업에 더많은 지망생이 몰리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곧 여당이 될 새천년 민주당이 최근 2차 조직책신청을 마감한 결과 평균경쟁률이 5.4대1에 달했다. 서울의 어떤 곳은 무려 18대1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야당인 한나라당의 경우 그제 공천희망자 1차모집을 마감한 결과 4백76명이 신청해 약 2대1의 경쟁률에 그쳤다.

한나라당은 게다가 명예총재가 어제 기자회견을 갖고 옛 민주당계의 공천지분을 요구하는 등 공천을 둘러싼 내분마저 일 조짐이다.

어쨌든 이번에도 한다 하는 인재들이 '구름처럼' 모여든 덕분에 여야 3당과 창당을 준비 중인 다른 정당들.무소속 후보까지 합치면 16대 총선은 지난 15대 총선의 경쟁률을 넘어설 가능성이 생겼다.

15대 총선의 지역구에는 총 1천3백89명이 후보로 등록해 전국평균 5.5대1의 경쟁률을 나타냈고, 이는 63년 6대총선 이래 최고치였다.

그러나 공천희망자가 넘치는데도 불구하고 상당수 유권자가 이들에게 사시(斜視)를 보내는 풍토는 여전하다. 정치.정치인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 탓이다.

정당들은 공천 기준으로 참신성.전문성.개혁성.도덕성 등 듣기 좋은 말을 다 갖다 붙이고 있지만 이번에도 결국 정당보스들에 의한 하향식 공천이 재연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보스의 눈짓.손짓 하나에 오락가락 해서야 아무리 참신한 전문가인들 보스보다 국민을 더 무섭게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오죽하면 며칠 전 국회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야당부총재를 응급처치해 생명을 구한 의사출신 동료의원의 미담을 놓고 '의원의 전문성이 발휘된 드문 사례' 라는 뼈있는 농담까지 나왔을까. 과거 민정당에 몰렸던 정치지망생들은 권력의 단물이 빠지자 다시 구름처럼 흩어졌다. 정치권의 이번 공천만은 그렇게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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