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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 시간 제한? 대치동 엄마의 쓴웃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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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살아오는 동안 ‘육군 대장 전두환’에게 딱 한 번 박수를 쳐본 일이 있다. 1980년 7월 30일,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장 전두환 장군의 발표문 중 한 대목이다. “…과열 과외로 인한 사회 계층 간의 위화감을 해소하면서 범국민적 단합을 촉진시키고자 ‘과감한’ 과외 해소 방안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과외 해소 방안은 정말 과감했고, 간단했다. 아시다시피 과외 자체를 전면 금지시켰다. 그것이 해방 이후 우리 교육사에 유례가 없는 ‘교육혁명’ 아니 ‘교육 쿠데타’였던 ‘7·30 조치’다.

요즘 ‘그런 쿠데타라도 다시 일어났으면…’하고 바라는 부모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지난 10월 26일의 일이다. 독자 한 분이 기자에게 e-메일을 보내왔다.

“중·고생 두 자녀를 둔 대치동 주부예요. 사회부 기자시니 요즘 사교육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아시겠지만 학부모로서의 피로감은 이루 말할 수 없네요….” 그 이름도 유명한 ‘대치동 엄마’였다. 부끄럽지만 사교육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몰랐다. 그래서 이 독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요즘 학원 심야교습도 금지되고 해서 사정이 좀 나아지지 않았습니까?”
‘대치동 엄마’가 웃었다.

“한 달 전인가 특목고 입시학원에 전화해 수업시간표를 물어보니까 오후 6시부터 12시까지라던 걸요? 아주 드러내놓고.”

교육 당국이 밤 10시까지만 심야교습을 허용한 것은 한 강좌만 수강하라는 취지일 것이다. 그러면 절반쯤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교육 당국이 나름대로 특단의 대책이라고 내놓은 학원 심야교습 제한 조치가 반짝 효과마저 내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 학원의 한 과목 수강료는 70만원이 넘었다. 두 과목을 듣는다면 140만원.
“남편이 뼈 빠지게 번 돈을 죄다 학원에 갖다 줘야 해요. 대치동 엄마들은 모임이 있어도 5000원짜리 이상 먹지 않아요.”

기자가 서울 대치동 학원가를 찾은 건 11월 3일이었다.

바로 며칠 전 헌재는 심야교습 제한이 ‘합헌’이라 결정했고 교육 당국은 심야교습 단속을 강화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밤 10시50분의 대치동 학원가. 도로변에 있는 어느 특목고 학원의 불은 완전히 꺼져 있었다. 하지만 학원 정문 앞, 옆 건물, 학원 앞 보도 위엔 승용차 수십 대가 주차돼 있었다. 실내등을 꺼놓고 있어서 얼핏 보면 빈 차인 듯 싶었으나 아이들을 픽업하러온 학부모들이 차 안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밤 11시. 불 꺼진 건물에서 한 명씩 학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두 강좌를 수강했을 시간이었다.

교육청 단속강화 방침이 나온 직후의 풍경이 이랬으니, 이 제도의 운명이 어떨지는 정책 입안자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현장을 목격하고 난 뒤 ‘대치동 엄마’와 다시 통화했다.

“거봐요. 지키는 사람만 바보되는 거지요.”

그러나 그는 별로 억울하진 않은 듯했다.

“단속 잘해서 학원 문 닫으면 뭐해요. 더 비싼 과외가 기승을 부릴 텐데. 사실 ‘고입’ 사교육 시장이 ‘대입’ 시장보다 훨씬 심각해요. 과학고를 가려면 초등 4~5학년부터 5~6년간 엄청난 비용이 들어요. 외고 학원의 문제는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고요. 민사고는 가산탕진할 각오해야 해요. 중2 때 IBT 토플 115점(120만점), 국어능력인증시험 3~4급, 한국사인증 3급, 수학경시 수상 실적 등이 준비돼야 하는데, 저런 스펙을 갖추려면 얼마큼 갖다 줘야겠어요? 외고, 과학고는 ‘학원빨’로 고3 과정까지 거의 마치고 들어 온 아이들을 데리고 손 안 대고 코 푸는 거지요.”

그래서 그는 외고 폐지론자다. ‘대치동 엄마’의 결론은 이랬다.“서울 변두리나, 지방 엄마들은 돈 없어서 아이들 학원도 못 보낸다고 괴로워해요. 애들 잡는 현장이 사교육 현장이고, 사교육이 30대부터 부모들 삶의 질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면 이젠 ‘극단적 처방’을 써야 할 시점이 아닌가요?”

최근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씨는 과외금지 여부를 놓고 국민투표를 제안한 적이 있다. 그것이 내수 시장을 살릴 최고의 경기부양책이라면서. 맞는 말이다. 많은 가구에 매달 100만~200만원씩의 가처분소득이 생긴다면 한국 경제가 다 살아날 것이다.

만약 그게 어렵다면. 지금 세종시에 뭘 옮겨야할지 논란이 뜨거운데, 차라리 대형 학원 몇 개가 세종시로 이사 갔으면 좋겠다. 그럼 세종시는 분명 대박이 날 텐데.

강민석 사회탐사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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