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일 환율전쟁의 실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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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호 35면

최근 유가나 주가 등 금융지표들이 미 달러화의 동향에 따라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에서 시작됐지만 달러화는 리먼 사태 이후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안전자산 선호 심리에 따라 오히려 강세를 나타내는 기현상을 보였다.

지난 3월 이후 국제금융시장이 안정세를 보이면서 달러화는 다시 약세 추세로 돌아갔다. 이런 와중에 브릭스(BRICs) 및 중동 국가 등이 달러화의 기축통화 자격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 정부는 이런 불만이나 장기간의 달러 약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글로벌 무역불균형의 해소 필요성을 줄기차게 제기하고 있다. 기축통화로서의 위상도 중요하지만 아직까지는 그것에 신경 쓸 단계가 아니며, 달러 약세를 통해 무역불균형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속내를 엿볼 수 있다. 이에 따라 달러화는 내년에도 본격적인 금리인상 시까지 약세가 좀 더 지속될 것이라는 게 시장의 일반적인 예상이다.

한편 일본은 1980년대 중반 플라자 합의 이후 급격한 환율 조정에 의해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하며 미국의 위력을 실감했던 터라 최근에 재개된 엔화 초강세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조치를 강구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 당국은 2003년 4월 시장개입을 중단하면서 환율 문제는 미국의 뜻에 동조하는 태도를 보여 왔다. 일본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엔 캐리트레이드’라는 거래가 확실히 자리 잡고 있어 환율 문제에 대해 다소 여유로울 수 있었다. 실제로 2003년 시장개입을 중단한 이후 지난해 상반기까지 전 세계적으로 엔 캐리트레이드가 성행하면서 엔화 약세 기조가 지속돼 일 경제에 효자 노릇을 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예기치 않게 글로벌 금융불안이 확산되자 기존의 엔 캐리트레이드 거래를 조기에 청산하려는 수요가 집중되면서 반대로 엔화가 초강세를 나타냈다. 지난 3월 이후 금융시장이 정상화돼 엔 캐리트레이드 수요가 재개되면서 엔화가 다시 약세를 보일 것으로 기대됐지만 기다리던 엔 캐리트레이드는 나타나지 않고 미국의 적극적인 금리인하에 힘입어 ‘달러 캐리트레이드’라는 거래가 부상했다. 그러나 내년 이후 미국이 금리인상을 하게 된다면 재차 엔 캐리트레이드 수요가 나타나면서 엔화 초강세 현상은 막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일본과 달리 중국은 미국과 국제사회의 거센 위안화 절상 압력에도 불구하고 금융위기 발생 이후 지금까지 달러당 6.82 위안 수준으로 거의 고정환율에 가까운 통화정책을 고집하고 있다. 미·중 간의 힘겨루기가 심해지며 일각에서는 환율전쟁이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중국 당국은 올 들어 수출이 급감하고 성장률이 하락하자 강경 자세로 돌변했다. 동시에 아시아권에서 위안화의 위상을 끌어올리려는 노력도 병행했다. 그러나 중국 당국도 대규모 대미 무역흑자를 완화하기 위해 2005년에는 페그제 포기와 함께 점진적인 절상 흐름을 허용하는 등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여 왔다. 이를 감안할 때 향후 시장 상황이 호전되고 경기회복이 가시화된다면 점진적인 위안화 절상 정책을 재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환율 전쟁은 의외로 싱겁게 끝나버릴 가능성도 있다.

얼마 전 벤 버냉키 의장의 한국 원화와 관련한 발언 사실이 침소봉대되면서 우리는 미국의 환율조정 타깃이 마치 한국인 양 호들갑을 떨었다. 아직까지는 미·중 간 환율 문제를 선결하는 것이 급선무이므로 당장 환율 문제로 한·미 간에 갈등이 생길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경기 상황이 좋아지면 원화가치는 점진적인 강세를 나타낼 것이라는 데 국내외적으로 별 이견이 없다. 그래서 미국 등 선진국들은 우리 통화당국의 대응 태도 역시 눈여겨 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압력에 대응해 일본이 엔 캐리트레이드라는 안전판을 만들었듯 우리도 강대국들의 통화정책 압력에 대응할 수 있는 안전판을 검토해봐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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