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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법 폐지 위헌 논란] 보안법 존치론 쪽 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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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한은 우리의 체제를 흔들려는 반국가단체인가, 아니면 독립된 주권국가인가.

현행 형법을 부분적으로 손질하고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북한의 법적 실체를 둘러싼 논란이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보안법을 폐지하고 이를 형법으로 대체할 경우 북한을 정의하는 별도의 법이나 조항이 없으면 위헌 소지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국가가 아닌 반국가단체"=우리 헌법(제3조)은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부속 도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한반도에 대한민국을 제외한 어떤 국가도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다. 북한을 주권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보안법 제2조는 정부를 참칭(僭稱.제 멋대로 스스로 국가라고 일컬음)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내외 결사, 또는 집단으로서 지휘통솔 체제를 갖춘 단체를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수사기관과 법원은 이 같은 헌법과 보안법 규정에 따라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지목해 왔다.

따라서 헌법을 근거로 반국가단체의 개념을 정리한 보안법(제2조)이 사라지면 북한을 실존하는 하나의 국가로 받아들이는 꼴이 된다는 설명이다. 보안법 폐지가 헌법에 위배될 수 있다는 논리다.

검사 출신의 한나라당 장윤석 의원은 "북한을 '국가를 참칭하는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보안법을 폐지하면 북한에 대한 정의가 사라진다"며 "이는 한반도에 남북한 두개의 국가가 존재한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의 한 공안부 검사도 "보안법 폐지론자들은 이제는 북한이 큰 위해 세력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반국가단체로 볼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이를 위해선 북한을 인정하는 쪽으로 헌법을 먼저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란 선동해도 폭동 없으면 처벌 못해"=보안법 폐지론자들은 북한이 반국가단체라는 개념을 살려 형법에 추가하면 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또 보안법의 처벌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하면 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개정 또는 존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형법으로의 대체는 위헌의 소지가 크다고 반박하고 있다.

폐지론자들은 보안법상 반국가단체 가입.구성(제2조)을 형법상 내란죄(제87조).외환죄(제92조)로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환죄는 외국인과 그 공범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북한을 외국, 즉 하나의 국가로 인정해야 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내란도 폭동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폭동이 없으면 역시 법 밖에 놓일 수밖에 없다.

일례로 북한 공작원들이 서울 시내를 활보하면서 노동당 가입을 권유하고 다녀도 폭동의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내란죄로는 처벌하지 못한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형법상 준적국 규정에 북한을 포함하면 된다는 주장도 있다. 서울대 법대 조국 교수는 최근 한 토론회에서 "형법 제102조에서 이미 북한을 준적국으로 규정하고 있다.

보안법에 반국가단체 규정이 없더라도 북한과 관련된 각종 범죄를 형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 역시 북한을 하나의 국가로 봐야 하는 전제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이일우 변호사는 "형법 제102조는 '대한민국에 적대하는 외국 또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북한을 준적국 규정에 넣으려면 헌법 제3조와 배치된다"고 일축했다.

잠입.탈출죄(제6조)와 찬양.고무죄(제7조)도 외환죄나 간첩죄(제98조)를 적용할 수 있다는 주장은 외국인이란 전제가 붙는다. 북한을 국가로 인정했을 때만이 처벌이 가능하다는 문제와 역시 충돌한다.

또 북한과 그 추종 세력을 형법상의 범죄단체(제114조)로 보자는 주장(건국대 법대 임지봉 교수)에 대해서도 검찰 관계자는 "보안법이 폐지될 경우 북한이 폭동을 일으키는 등의 구체적인 범죄행위를 하지 않는 한 범죄단체로 처벌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무장간첩 신고 안 해도 죄 안 돼"=보안법의 불고지죄를 범인은닉죄로 처벌하자는 주장이다. 형법상 범인은닉은 적극적으로 범인을 돕는 행위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형법상 범인은닉죄(제151조)로는 무장간첩을 가득 태운 잠수함이 동해안에 상륙하는 것을 보고 신고하지 않아도 상륙을 돕지 않은 이상 처벌할 수 없다.

이석연 변호사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해 형법으로 대체하려면 또 다른 특별법이 추가될 수밖에 없다"면서 "보안법을 폐지하느니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독소 조항을 개정하는 쪽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전진배.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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