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샐러리캡 하려면 제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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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전력 차이가 너무 심해 경기의 승패를 쉽게 예상할 수 있다면 이는 진정한 의미의 스포츠와는 거리가 멀다. 스포츠의 묘미가 ‘각본 없는 드라마’인데 승부가 뻔하다면 각본이 짜인 스토리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런 걸 돈 주고 볼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몇몇 프로 스포츠에서는 팀간 극심한 전력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샐러리캡 제도(팀 연봉총액상한제)를 둔다. 부자 구단이 우수 선수를 싹쓸이하는 폐단을 막기 위해서다.

선수들이 돈을 많이 받는 것은 비난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샐러리캡은 전력 평준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지지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특히 이변이 별로 없는 농구에서는 대다수 리그가 샐러리캡 제도를 두고 있다. 샐러리캡이 없었다면 미국프로농구(NBA)의 인기가 훨씬 덜했을 거라는 얘기도 나온다.

샐러리캡이 있는 리그에서는 특정 팀이 기량이 출중한 선수들을 싹쓸이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 여자프로농구는 그렇지 않다. 샐러리캡 제도가 있지만 유명무실하게 운영되기 때문이다. 본지의 잇따른 보도로 실체가 드러났지만 일부 상위권 팀은 연봉과 맞먹는 거액의 수당을 선수들에게 지급하면서 샐러리캡 제도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샐러리캡이 9억원으로 제한돼 있는데도 신한은행의 경우 지난 시즌 그 두 배가 넘는 돈을 선수들에게 지급하며 우수 선수들을 잡아뒀다. 그 덕분에 신한은행은 최고 선수들을 앞세워 프로세계에서는 찾기 어려운 92.5%라는 놀라운 승률로 우승했다. 여자농구장에 관중이 거의 없는 게 뻔한 승부 때문이라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이렇게 허술하게 운영할 바엔 샐러리캡 제도를 없애는 게 오히려 정직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샐러리캡은 종목의 인기와 관중수, 팀의 재정 상황 등을 감안해 팀들이 결정한 액수다. 그래 놓고서 뒤로는 각종 명목의 수당으로 지급액을 대폭 올린다면 순진하게 규칙을 지키는 구단만 골탕을 먹을 수밖에 없다. WKBL 사무국의 아마추어 같은 행정도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연봉 이외에 어떤 돈을 줘서는 안 되는지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하는데 구멍 뚫린 그물처럼 규정이 허술하다. 이런 규정을 악용한 구단 행태는 물론 더 나쁘지만.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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