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대륙 유라시아] 5. 에너지벨트화하는 극동지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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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사할린의 주도 유주노 사할린스크에서 다시 북쪽으로 약 7백㎞를 날아가면 오호츠크해상에 섬처럼 점점이 떠 있는 해상 석유시추시설들을 만날 수 있다.

한반도 동북쪽 끝에서 직선거리로 1천2백여㎞ 정도 떨어진 해상이다.

일본.미국.영국.네덜란드.러시아의 대표적 석유생산회사들이 지난 1994년부터 21세기 에너지 공급의 메카를 꿈꾸며 탐사.개발을 거듭해오고 있는 이곳이 바로 사할린1, 2, 33광구다.

이중 사할린 2지구로 알려진 필툰.아스토크스코예 광구에서 지난해 여름 처음으로 검은 황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당시 이 지역에서 시추작업을 진행했던 미 석유탐사업체 마라톤사의 직원 에드워드는 "그날처럼 검은 석유가 황금처럼 번쩍거려 보였던 적은 없었다" 고 말했다.

이 유전은 극동아시아에서 발견된 것으로는 거의 처음으로 상업적 생산이 가능한 규모의 대형유전이다.

사할린의 석유전문가 세르게이 스클랴로프는 "최근 이들 광구에서 발견된 석유를 상업적으로 채굴하기 시작했다" 며 "21세기 극동아시아지역의 에너지는 사할린 유전이 해결할 수 있다는 새로운 자신감에 차 있다" 고 말했다.

사할린과 극동 시베리아의 유전과 가스전 개발계획은 러시아의 극동지역을 중동 못지 않은 거대한 자원보고로 바꿔놓을 초대형 자원개발 프로젝트다.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현재 21세기 거대산업국가 진입을 위해 에너지 확보방안을 마련 중인 중국이 목을 매고 있을 만큼 중요한 사업 중 하나다.

또 에너지 소비가 급증세를 보이고 있는 한국과 일본으로서도 관심을 가져야 할 프로젝트다.

모스크바의 석유분석가 에드아르드 기스마툴린은 "동북아 지역은 전세계적으로 에너지 수요 증가율이 가장 높은 곳" 이라며 "특히 경제성장으로 에너지 수요가 늘고 있는 중국의 운명은 앞으로 에너지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확보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고 지적했다.

그는 "해결책은 러시아의 사할린, 이르쿠츠크, 크라스노야르스크의 카탕스키, 유르브츠노-트콤스키 석유가스전의 개발밖에 없다" 고 단언했다.

미 동서문화센터(East-West Center)의 최근 보고서는 2010년 중국의 석유수요는 3억2천4백만t으로 현재의 2배를 넘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여기에다 일본과 한국의 에너지 수요를 더하면 7억t 정도의 에너지 수요가 발생한다.

이는 97년 현재 중동지역의 석유수출 가능물량 전체를 합친 것에 버금가는 양이다.

새로운 대규모 에너지 공급원을 찾지 못한다면 전세계는 심각한 에너지 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

동부시베리아에 위치한 크라스노야르스크의 대외경제국장인 세르게이 카체로프는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러시아는 시베리아.극동.사할린의 에너지 개발을 위한 관련국의 투자와 협의를 적극 제의하는 것" 이라고 말했다.

그는 "동북아지역 국가들의 협력으로 러 극동.시베리아 지역도 개발하고 발달된 선진산업국인 한국.일본.중국은 에너지를 확보하는 윈-윈 전략이 21세기에 가동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고 말했다.

그러나 주변 당사국 중 자원외교의 발이 가장 늦은 쪽은 한국이다.

사할린1, 2, 3 광구 프로젝트에서 한국은 소외됐다.

1994년 6월 이후 사할린 1, 2 광구 등에 대한 참여가 논의됐고 지분 10%를 얻기 위한 노력도 있었으나 일본측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르쿠츠크 가스전 개발사업에선 한국을 배제하려는 중국의 입장으로 한동안 곤욕을 겪다 한.러 양국 정상간의 합의 등으로 겨우 발을 담근 상태에 불과하다.

한때 한보가 의욕적으로 총 4백만달러를 투자해 가스전 광권사인 러시아 석유사의 주식을 인수, 한국측이 최대주주가 됐으나 한보의 부도로 현재 광권의 대부분이 영국 주도의 BP에 매각된 상태다.

반면 중국과 일본은 결사적이다.

일본은 사할린 해상프로젝트에 중국과 한국의 참여를 사실상 봉쇄하면서 여기에서 생산된 물량을 한.중에 팔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중국은 이르쿠츠크 가스전 개발에 막대한 자본과 기술이 소요되는 것을 알면서도 한국의 참여에 대해 부정적이다.

반면 러시아는 우리에게 우호적이다.

어차피 단독으로 개발할 수 없는 상황인 데다 한 국가라도 더 많이 러시아의 에너지 벨트에 포함되는 게 장기적으로 러시아의 국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크라스노야르스크.유주노 사할린스크〓김석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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