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말 공감" "법치국가 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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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右)과 천정배 원내대표가 6일 상임중앙위원회의에서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 등에 대한 위원들의 의견을 듣고 있다(사진 (上)).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左)와 이강두 최고위원이 상임운영위원회의에서 참석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김형수.조용철 기자

*** 폐지로 돌아선 여권

정부와 여당은 6일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속전속결 전략을 구사한다는 방침을 일제히 밝혔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6일 기자간담회에서 "정부 입장은 이미 정리됐다"고 말했다. 기자들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추가로 논의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정 장관은 "당(여당).정(정부).청(청와대) 간 여러 논의가 있었다"고 대꾸했다. 논의는 끝났다는 얘기였다.

신중하던 열린우리당 지도부도 달라졌다. 당초 정부 부처에 대한 국회의 국정감사 이후인 11월 중 보안법 문제에 대한 당론을 모으겠다던 방침부터 수정했다. 늦어도 이달 안에, 이르면 이번 주중에도 폐지 당론을 확정할 수 있다는 쪽으로 돌아섰다. 천정배 원내대표는 "보안법이 낡은 시대의 유물이라는 대통령의 지적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신속히 당론을 확정하겠다"고 했다.

당장 우원식.임종석 의원 등 폐지론자들이 이날 오후 모임을 열고 형법을 보완하는 작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보안법 폐지를 기정사실화하고 나선 셈이다. 소장파 의원 모임인'새로운 모색'회원들은 7일 김대중 전 대통령을 예방해 지지발언을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반면 보안법 개정론자들의 목소리는 위축되고 있다. 안영근 의원 등 8명은 이날 긴급 모임을 열고 대책을 논의했으나 역부족임을 자인했다. 안 의원은 "전면 폐지는 시기상조이나 당론이 폐지로 정해질 경우 대체입법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들이 말하는 대체입법은 보안법 폐지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젠 보안법이란 존재를 소멸시킨다는 게 여권에선 대세가 됐다.

그렇다고 여권에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당.정 내부적으론 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보안법 폐지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사안"(천 원내대표)이란 말도 그런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여권은 특히 보안법 폐지와 남북 정상회담의 연계설이 퍼져 곤혹스러운 모습이다. 정동영 장관도 "남북 정상회담이 추진되고 있지 않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고 했지만 이런 관측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보안법 폐지에 상응해 북한의 노동법 규약도 개정돼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정 장관이 "북한에 대한 내정간섭일 수 있다"며 소극적 반응을 보인 것도 정상회담과의 연계설을 부추기고 있다. "여권이 북한의 눈치를 보는 것은 아무래도 정상회담 때문 아니겠느냐"는 관측이 나오기 때문이다.

강민석 기자

*** 한나라 의총 비난 목청

한나라당이 6일 노무현 대통령의 국가관과 정체성을 문제삼고 나섰다. 노 대통령의 국가보안법 폐지 발언과 관련해서다. 포문을 여는 데는 박근혜 대표가 앞장섰다. 박 대표는 당 상임운영위에서 "노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대통령이 갖고 있는 국가관.통치관.법에 대한 태도에 큰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발언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판결을 무시하고 법치국가를 포기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형오 사무총장은 "대통령의 발언은 민주주의의 3권분립 원칙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이는 곧 독재"라고 했다.

이어 오후에 열린 의원총회에서도 노 대통령을 성토하는 발언이 쏟아졌다. 김덕룡 원내대표는 "노 대통령이 궁극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지배세력을 교체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더불어 "(노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북한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도 했다.

이방호 의원도 "노 대통령이 공산당을 허용하자는 말을 했는데 보안법 폐지 발언은 그 뒤를 잇는 것"이라며 "김정일의 (서울)답방을 성사시키기 위한 정지작업"이라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의 발언 이면에는 남북 정상회담을 의식한 일종의 정략이 깔려 있다는 게 한나라당의 시각이다.

임태희 대변인이 이날 '북한과 짜고 치는가'라는 논평을 통해 "노 대통령의 발언엔 북한의 숙원을 풀어주고 그 대가로 남북대화를 재개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게 아니냐"고 의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보안법 폐지를 결사적으로 저지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의총에서 김용갑 의원은 "대통령 발언은 보안법을 지키려는 사람들에 대한 총공세이자 선전포고"라며 "박 대표는 온몸으로 막아야 하며, 안 되면 사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경 의원은 "대통령의 자질이 의심스럽다"며 "국민 여론을 모아 여당을 압박해 나가자"고 했다.

박 대표는 의총을 정리하면서 "안보의 상징인 보안법을 폐지하겠다는 대통령의 의도를 모르겠다"며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에는 단호히 맞서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만 시대 흐름에 맞게 운영상의 문제를 일부 개정할 수는 있다"고 했다. 일부 손질은 하더라도 보안법을 지키겠다는 얘기다. 한나라당이 조만간 구성하기로 한 국가수호 범국민비상대책위원회(가칭)도 이 일을 하기 위한 것이다.

박소영 기자 <olive@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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