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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의 소리를 찾는 여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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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헤더 윌로비(44, 한국명 류재희) 교수는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비교문화학과에서 한국음악을 가르친다. 그가 판소리와 맺은 인연은 2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헤더 윌로비(미국) | 판소리 전문가

한국이 민주화로 몸살을 앓던 1986년 7월 성남의 한 대학교에서 판소리 명창 김소희(1917~95)의 다섯마당(춘향가·흥부가·심청가·수궁가·적벽가)을 들으면서다.

그녀는 “강당 맨 뒷자리에 있다가 나도 모르는 힘에 이끌려 맨 앞줄로 갔다”고 말했다. 미 중부 콜로라도주 출신으로 독실한 몰몬교(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 집안에서 성장하며 어릴 적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덕분에 유타주 브리검영대의 음악교육학과에 입학했고, 1986년 5월 선교사로 한국에 와 약 1년 반가량 살았다.

대체 그런 그녀가 판소리의 매력에 빠진 이유가 뭘까? “김 명창은 왜소한 체구였지만 그녀의 폭발적인 가창력은 강당을 쩡쩡 울리고도 남았다. 단번에 모든 청중을 사로잡았다”고 그녀는 말했다. 물론 부족한 한국어 실력 탓에 판소리 다섯마당의 가사를 전부 이해하진 못했다.

그러나 첫째, 김 명창이 하나의 스토리를 전하며 여러 등장인물을 묘사한다는 점, 둘째, 마치 재즈처럼 가사를 즉흥적으로 바꿔 학생들의 답답한 처지를 창으로 표현한다는 점은 알고도 남았다. 막상 그녀가 무대 맨 앞에 이르자 김 명창은 몸을 쪼그리고 원숭이 흉내를 내며 무대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아마도 나를 미국을 상징하는 인물로 여겼던 듯하다”고 그녀는 말했다(당시 ‘헬로 헬로 미스터 멍키’란 노래가 유행했다). 그러나 무대 뒤까지 끈질기게 쫓아가 판소리에 관해 한국어로 묻자 김 명창은 다소 당황했던 듯하다. “마치 자신의 즉흥적인 몸짓의 의미를 이해했겠구나 하고 말이다.

그러나 김 명창은 매우 고맙고 우아한 분이었다. 덕분에 역시 판소리를 하는 김 명창의 딸(박윤초)도 한두 차례 만났다”고 윌로비 교수는 말했다.

그녀가 판소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판소리 다섯마당의 등장인물과
가사의 소구력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통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판소리는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timeless)”고 그녀가 말했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점은 효과적 감정 전달인 듯하다. 노래를 통해 인간의 슬픔과 기쁨을 그렇게 압축적으로 전달하는 장르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 젊은이들은 가사 이해가 쉽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 명창이 2시간에서 길게는 8시간까지 부르는 판소리를 한번 들어 보라. 깊고도 깊은 감정의 울림을 저절로 느끼게 된다.”

결국 그녀는 선교사 활동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 1994년 뉴욕 컬럼비아대학원에서 서양음악 대신 민족음악(ethnomusicology), 그중에서도 한국 전통음악을 공부하기 시작했다(8년 만에 ‘한의 소리: 판소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 과정에서 필드 연구차 1999년 ‘운명의 땅’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국립국악원에서도 1년간 정식으로 판소리를 공부했다.

수많은 판소리 명창을 만나고, 공연장을 들락거리고, 국립국악원의 떠오르는 별 이주은(37)에게도 사사했다(이주은은 명창 신영희에게, 신영희는 김소희에게 사사한 ‘계보’가 마침내 완성됐다). 덕분에 요즘도 매주 대학원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나면 교수실에서 학생들에게 판소리를 들려주거나 자신이 직접 쓴 단가(판소리의 맛만 보여주는 편)를 들려준다.

현재 ‘춘향가’ 중 몇 곡과 ‘수궁가’ 중 한 곡의 완창이 가능한 그녀는 얼마 전 한국전통문화원에서 열린 ‘우리 소리 한마당’에서 ‘춘향전’ 중 ‘방자 분부 듣고’를 열창해 청중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이제 다음 목표는 뭘까? 그녀는 “진정한 판소리꾼이 돼 완창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판소리 한 가닥을 들려달라고 하자 판소리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전에 배운 남도민요 중 함양양잠가(일명 ‘에이야 디야’)를 슬쩍 들려준다. “에이야, 디야, 에~에이야. 에~이, 두견이 울음운다~두둥가~실실로 불러라. 나는 죽~어 만접종산에 고드름되고~.” 순간 몇 년 전 전북 고창에서 열린 김소희 추모 판소리 공연 때 그녀가 안숙선 명창에게서 느꼈다는 전율이 기자에게도 온 듯했다.■

강 태 욱 뉴스위크 한국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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