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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의 시대' 어떻게 볼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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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전 세계적으로 테러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9.11'이후 무려 2900여건의 테러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테러의 시대'를 살아가는 의미를 짚어본 두 종의 책이 동시에 출간됐다. '테러 시대의 철학:하버마스, 데리다와의 대화'(문학과지성사)와 '아부 그라이브에서 김선일까지'(생각의나무). 테러 현상을 철학적으로 성찰해보게 하는 책이다.

'테러 시대의 철학'은 철학자 하버마스와 데리다가 '9.11 이후의 테러 시대'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형식이다.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돼 화제를 모은 이 책은 특히 하버마스와 데리다가 각기 근대론과 탈근대론을 대변하면서 논쟁을 벌였던 사이였기 때문에 더욱 주목을 받았다.

이들이 직접 만난 것은 아니다. 미국의 지오반나 보라도리(바사르대.철학) 교수가 두 사람을 각각 인터뷰하며 중계했다. 이를 계기로 두 철학자는 지난해 5월 31일 '테러에 관한 공동선언문'을 독일과 프랑스에서 발표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 하버마스는 '9.11 테러'를 "최초의 세계사적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과거 민족해방운동 과정에서의 테러리스트가 이후 정치 지도자로 부상했던 것과 달리 9.11 테러는 정치적 목표와 내용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그는 "부시 대통령의 '테러와의 전쟁 선언'은 테러리즘에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데리다는 "냉전 이후 시대의 특징인 테러리즘은 냉전보다 더 나쁜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해체주의자답게 "테러리즘 개념을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테러리즘이란 용어를 자명한 개념인 것처럼 사용하는 것은 테러리즘을 도와주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아부 그라이브에서 김선일까지'는 계간지 '당대비평'편집진이 기획해 '당대비평'가을호와 별도의 단행본으로 펴낸 특별호다. 슬라보예 지젝.장 보드리야르.에이미 캐플란.이시다 히데타카.지그문트 바우만과 도정일.김진호.진중권.박노자 등 국내외 전문가 24명의 테러 관련 글을 모았다.

제목에 나오는 '아부 그라이브'(성희롱이 벌어진 이라크 교도소)와 '김선일'이란 이름에서 보듯 이 책은 "테러는 더 이상 먼 나라의 얘기가 아니다"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특히 "지배권력의 폭력에 대한 '대응 폭력'의 정당성을 인정해 왔던 한국인의 테러관에 '김선일 사건'은 하나의 충격이었다"고 편집진은 밝히고 있다. 한국인 자신이 '대응 폭력적 테러리즘'의 희생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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