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핵무기 제조 88년 미국이 제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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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홍콩〓진세근 특파원]대만이 이미 80년대 중반에 핵무기 제조기술을 갖췄으며, 핵실험 기지도 완성했으나 미국의 간섭으로 개발계획을 모두 중단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사실은 하오바이춘 전 대만 행정원장이 곧 출간 예정인 일기형식의 회고록을 통해 밝혀졌다.

대만 연합만보(聯合晩報)는 5일 "하오바이춘 행정원장이 그동안 비밀에 부쳐왔던 국내 핵개발 사실을 처음 공개했다" 고 보도했다.

그동안 대만이 핵무기를 제조할 만큼 높은 수준의 핵 관련 기술을 갖고 있다는 보도는 있었다.

그러나 대만 정부가 직접 핵실험을 계획하고, 핵무기 제조기술까지 갖춘 사실이 당시 행정 책임자의 증언을 통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참모총장과 국방장관을 거쳐 총리격인 행정원장까지 역임했던 하오바이춘은 곧 공개할 '81년부터 89년까지 참모총장으로 재임할 당시 기록했던 일기장' 을 통해 "대만 국군 소속인 중산(中山)과학연구소가 86년에 이미 핵무기 개발기술을 획득했으며, 남부 가오슝(高雄)시 동쪽 핑둥(屛東)시 주펑(九鵬)지역에 비밀 핵실험소도 건설했었다" 고 밝혔다.

당시 대만군은 총통의 지시만 있었다면 단기간 안에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었으나 미국이 위성사진을 통해 이같은 사실을 알아내는 바람에 핵무기 제조계획이 무산됐다고 그는 말했다.

미국이 위성사진을 제시한 것은 88년 장셴이(張憲儀)중산과학연구소 부소장이 돌연 외국으로 도주한 직후.

당시 미국 정부는 위성사진을 들이대면서 핵개발의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는 합의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다는 것. 하오바이춘 전 원장은 張부소장의 돌연한 출국과 미국의 위성사진 제시가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란 점을 강하게 시사했다.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도 취임한 지 얼마되지 않은 리덩후이(李登輝)총통에게 친서를 보내 핵문제를 하루속히 해결할 것을 요구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핵무기 개발과 관련, 하오바이춘 전 원장은 "86년 중산과학연구소가 전략 원거리미사일 제조 능력을 개발했다" 며 " '간위안 프로젝트(乾元案)' 로 명명된 코드명으로 순항 미사일 제조가 적극 검토됐었다" 고 말했다.

하오바이춘 전 원장이 분명히 밝히지는 않았으나 이같은 핵무기 개발도 미국의 압력으로 결국 무산된 것으로 보인다고 연합만보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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