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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총선 향해 뛰는 사람들] 15대 경제출신들 성적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1996년 4월 치러진 15대 총선 당시 경제인 출신 후보들의 활약은 눈부셨다. 개표결과 무려 20여명이 금배지를 달았다.

기성정치권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의 물갈이 욕구에 힘입은 덕이 컸다. 집권당 프리미엄을 업고 이들을 대거 영입한 신한국당(한나라당 전신)은 가장 짭짤한 성과를 올렸다.

14대 전국구의원이었던 이명박(李明博) 전 현대건설 회장은 서울 종로에 출마, 이곳에서만 4선을 기록한 국민회의 이종찬(李鍾贊)후보를 눌렀다.

쌍용그룹 회장 김석원(金錫元.대구 달성), ㈜기산대표 이신행(李信行.서울 구로을), 사조그룹 회장 주진우(朱鎭旴.성주-고령)후보, 그리고 이재명(李在明.부평) 전 대우그룹 기조실장 등이 지역구에 당선됐다.

야당(국민회의)도 영입에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쌍용그룹 전무출신 정세균(丁世均.무주-진안-장수).박상규(朴尙奎.전국구) 전 중소기협중앙회장 등이 배지를 달았다.

그러나 이후 이들의 정치권 내 활약은 기대에 못미치는 결과를 낳고 만다. 97년 대선 결과 정권교체라는 외풍 속에 여야간 명암도 크게 엇갈리게 된다.

김석원 의원은 98년 2월 "기업활동에 전념하겠다" 며 의원직을 사퇴했고, 한이헌 의원 등 경제관료 출신들의 활약상도 뚜렷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재명 의원은 대선 후 국민회의로 당적을 옮겼으나 별다른 역할을 맡지 못했다.

이명박 의원은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내놓았다. 이찬진(李燦振) 전 한글과컴퓨터사 대표도 의원직을 승계받은 지 5개월 만에 정계를 떠났다.

다만 정세균 의원 등 국민회의 출신들만이 정권교체 후 역할이 늘어나고 있어 대조적이다.

"참신성.전문성으로 정치입문의 혜택은 크지만 보스정치에 익숙한 정치풍토가 이들을 소화하기엔 역부족" 이라는 경제계 출신 한 재선 의원의 토로는 밀레니엄 새 정치의 과제이기도 하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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