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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약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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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아주 형편이 없게 되었을 때 몽땅 망하는 것보다는 아직 남은 게 있을 때, 즉 ‘그놈 아직 괜찮다’는 말을 듣고 있을 때 그만두는 용기, 그것도 멋있지 않을까.”

그러면서 그는 민정(民政)에 불참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모든 정당이 중상모략을 지양하고 정책을 내세워 신사적 경쟁으로써 국민의 신임을 묻는다’는 어려운 단서가 달렸지만 말이다. 하지만 불과 9일 뒤 그는 말을 뒤집었다. “이 나라는 몇몇 정신 차리지 못한 정치인들을 위해 있는 나라가 아니며 하물며 그들이 장난을 치기 위한 장난판이 아니다. 그런 경우에 이것을 못 본 체하는 게 애국적인 행동인가, 방관하지 않은 것이 애국적인 행동인가.”

한·일회담에 항의해 전국적으로 대규모 시위가 잇따를 때였다. 그는 다시 “현안의 종결과 이에서 오는 조국의 안전 및 국가 근대화의 기초가 확립된다고 하면 차기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재출마 포기 선언으로 알려진 이 발언 역시 식언이었다.

3선에 도전할 땐 “나를 한 번만 더 뽑아 달라고 하는 게 이번이 마지막”이라거나 “고사를 지낸다고 해도 다시 나서진 않겠다”고 했다. 그는 당선된 지 7개월여 만에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그 이듬해엔 아예 종신 집권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고쳤다.

정치 영역에서만 그런 게 아니었다. 선거 때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10대 항구를 건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중 하나가 묵호항이었다. 정작 그가 돈을 넣기 시작한 건 세계은행 차관자금이 마련된 뒤였다. 그 사이 9년이 흘렀다. 호남선 복선화는 그의 사후 24년에야 완료됐다.

그는 자신의 번의에 대해 “(나에 대해) 신의가 없다고 하는 말, 참으로 뼈아픈 얘기다. 그러나 그 후의 정세 변경은 이런 결심밖에 나오지 못하게 했다”(조갑제,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고 해명하곤 했다.

누구나 짐작하듯 박정희 전 대통령의 얘기다. 그가 자신이 한 ‘약속’을 다 지켰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 선진 강대국이 100년에 걸쳐 이룬 걸 몇 십 년 만에 성취할 수 있었을까.

18년을 통치한 그는 대통령이란 자리에 대해 이같이 말한 일이 있다. “때론 일부 국민이 싫어하거나, 정부 처사에 대해 오해하는 일에 대해서도 국가의 장래를 위해 기어코 해야 되겠다고 생각한 일은 강력히 밀어오기도 했다. 국가의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제일 마지막에 가장 어려운 결심을 해야 되는 게 바로 대통령이다.” 실제 그는 야당의 극심한 반발, 또는 국민적 저항 속에서도 한·일 국교를 정상화했고 월남 파병을 했으며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첫 삽을 떴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정치 입문 시절에 주요 정치 지도자들에게 “아버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곤 했다. 요즘 박 전 대표가 역으로 이 질문을 받게 되면 뭐라고 답할까 궁금하다. 박 전 대표가 “아무리 표가 급해도 국민 앞에서 (세종시 원안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하니 말이다.

고정애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