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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사] 새 세기의 새 잣대를 갖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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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희망과 불안이 극적으로 교차하는 새 천년 새해를 맞는다.

가능성과 기회의 새 세기에 불확실성과 불가측성이 혼재하는 새 천년 아침을 불안섞인 기대감으로 맞는다.

왜 불안섞인 기대인가.

격변하는 세계의 흐름 속에서 확신이 없고 자신감이 없다.

무엇을 향해 어떤 방법으로 변화에 접근해야 할지 지향점이 없고 실천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밀레니엄 스탠더드.밀레니엄 코드를 찾아나서야 한다.

아직도 농경사회와 굴뚝산업의 낡은 잣대로 새 천년을 잴 것인가.

새 세기의 불확실성을 확신과 희망으로 바꿀 새로운 코드, 이성과 합리적인 디지털 잣대를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제각기 맡은 분야에서 만들어내야 하는 역사적 사명감을 지닐 때다.

지난 25년간의 기술변화는 엄청난 변화를 몰고왔다.

나라간.계층간 소득과 부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재래식 산업의 '옛 경제' 와 인터넷 '신 경제' 간의 격차는 날로 확대되고 있다.

지구적 규모의 상호의존성은 더욱 강화되고 세계재(世界財)와 국가재간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국민국가간 '경계 무너뜨리기' 가 가속되고 세계적 차원의 '규칙과 도덕의 통일' 이 확장일로에 있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아직도 사방이 불확실성 투성이다.

갈 길을 모르고 새로운 잣대마저 지니지 못했다.

지표상승에만 도취해 과소비와 고비용 기업체질이 되살아나고 물가불안.노사불안.눈덩이 재정적자에 빈부격차는 날로 확대되면서 정보통신.생명공학.환경산업 등 신전략산업은 아직도 걸음마 단계다.

'재벌 이후' 의 새 경제 엔진은 보이지 않고 우리 경제의 희망이라 할 벤처산업은 한탕을 노리는 '카지노 자본주의' 맛부터 들이고 있다.

관치(官治)금융은 틈만 나면 되살아나고 정치논리에 휘말려 경제는 언제나 뒷전이다.

올 봄 총선으로 경제가 어떻게 결딴날지 지금부터 걱정이 앞선다.

싱가포르.대만.인도.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국가들도 오래 전부터 경쟁력 강화 전략 수립에 부산하다.

중국과 일본의 아시아 재편구도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도 중대한 변수다.

지금 이대로 국경없는 경제전쟁에서 우리가 살아남을 것인가.

우리도 국가경영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제도와 틀만으로 개혁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잘못된 기업관행과 경영형태 전반에 스며 있는 경제문화를 쇄신해야 한다.

좁은 틀의 경제개혁에 매달려 아옹다옹할 게 아니라 세계경쟁이라는 큰 틀의 폭넓은 개혁을 부단히 추진해야 한다.

국경없는 경쟁에서 '밀레니엄 잣대' 를 지녀야 하듯 우리 내부 또한 '규칙과 도덕의 통일' 이라는 새 잣대를 만들어내야 한다.

세계화와 인터넷화는 시공을 초월하는, 어지럼증을 동반하는 복잡계다.

균형과 조화의 '어울림' 없이는 한시도 살 수 없는 어지러운 세상이다.

내 목소리를 내면서 함께 어울리는 '교향악적 질서' 없이는 복잡계는 혼란계로 빠지고 우리의 새 천년은 19세기말의 혼돈으로 다시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울림의 창출자는 지도자다.

교향악적 질서를 정치.사회.문화 각 분야에서 창출하기 위해서는 지도자의 능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지휘자의 손끝.눈짓 하나로 교향악적 질서는 달라질 수 있다.

대통령.정당지도자.경영자.노조 지도부.언론.지식인들의 눈짓과 몸짓 하나로 규칙과 도덕이 살아날 수도, 무너질 수도 있다.

규칙과 도덕의 규범은 법과 질서에서 나온다.

지난해처럼 법과 질서의 수호자인 검찰이 흔들리고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규칙과 도덕의 통일은 기대조차 할 수 없다.

사법부 독립이란 조직구성원들의 독자성 못지않게 그 독자성을 지켜줄 대통령의 의지가 더욱 중요하다.

법과 원칙을 준수하는 지휘자인 대통령의 강한 의지 없이는 규칙과 도덕의 교향악이 제대로 퍼져나올 수 없다.

지도자의 요건은 관용(寬容)이다.

특히 정치지도자는 남을 배척하지 않고 나와 다름을 포용할 줄 아는 관용과 이해가 기본덕목이어야 한다.

힘의 정치라는 유혹에서 벗어나 베풂의 정치, 나눔의 정치, 어울림의 덕치(德治)를 해야 한다.

이것이 밀레니엄 정치의 실천정신이어야 한다.

올 봄 총선은 어차피 치열한 선거전이 될 것이다.

음해와 반목, 그리고 지역감정이 교차하는 험난한 고비를 맞을 것이다.

정치가 이러고서야 세계화와 밀레니엄을 논의할 가치조차 없다.

정치지도자들의 뼈를 깎는 자성과 변신 없이는 우리의 밀레니엄은 남의 잔치밖에 될 게 없다.

제발 이번 총선을 바라보는 국민을 즐겁게 해주는 상생(相生)의 정치를 당부한다.

공정한 경쟁, 당당한 승리가 우리 정치를 복원하고 국민에게 규칙과 도덕의 통일성을 확보해 주는 모범이 돼야 한다.

결국 우리의 불안한 새 천년 첫 해를 희망과 확신의 기회로 만들고 우렁찬 교향악이 울려퍼지는 한해로 만들기 위해선 새로운 기준과 질서, 새 잣대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새 잣대를 선도해 아름다운 교향악을 창출하자면 각계의 지도자들이 불철주야 솔선수범하는 각고(刻苦)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야 새 천년은 우리에게 가능성과 기회의 새 세기로 다가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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