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지식·정보산업혁명 경제학 원론까지 바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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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20세기말에 제2의 산업혁명을 불러온 지식.정보산업의 혁명으로 기존 경제이론으로는 설명이 어려운 경제현상이 속출하고 있다. 사이버시장의 각종 프로그램 파일이 대표적인 예. 보통 물건은 생산을 늘릴수록 생산비가 더 들어가지만, 프로그램 파일은 추가 비용을 거의 들이지 않고도 무한정 복제할 수 있다.

지식.정보산업이 20세기 경제학의 골간을 이루는 '수확체감의 법칙' 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네트워킹 기술의 발달로 시간.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사이버 공장' 에서는 거꾸로 '수확체증의 법칙' 이 작용한다. 한 사람보다는 두 사람이, 두 사람보다는 세 사람이 일할 때 생산성이 높아진다.

종래의 경제학이 도전받기는 국가경제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기존 경제이론으로는 실업과 물가상승은 서로 반대로 움직인다. 이른바 필립스커브 이론이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지난 10년 실업률이 떨어지는 가운데 물가는 더 안정되고 있다.

왜 그럴까. 이제 기존의 경제학은 버려야할 것인가. '신경제이론' 의 대표주자인 미국 스탠퍼드대의 폴 로머 교수는 지식.정보산업 혁명에서 해답을 찾는다.

지식.정보산업에서는 수확체증의 법칙이 작용하기 때문에 고용증가로 실업률이 떨어져도 생산성이 그보다 더 높아져 물가상승 요인을 흡수해버린다는 얘기다.

더욱이 이 산업들은 한동안 수확체증의 법칙이 지배할 정도로 무한한 발전가능성이 있고, 그만큼 미국경제의 장기호황이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미국의 나스닥지수가 사상 최고기록을 연일 경신하고 있는 현상이 이해가 된다.

미국경제의 장기호황은 성공적인 구조조정으로 시장이 경쟁원리에 따라 움직이게 됐다는 점으로도 설명된다.

중앙대 허식 교수는 "노동시장이 경쟁구조로 바뀌면서 임금도 일률적으로 오르지 않고 성과에 따라 차등화됐다" 며 "이런 임금체계가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됐다" 고 지적했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않다. MIT대의 폴 크루그먼 교수는 "미국의 장기호황.물가안정은 유가(油價)등 국제원자재 가격의 하락에 기인한 것일 뿐" 이라며 "국제원자재 가격 상승이란 외부충격이 오면 언제든 꺼질 수 있는 거품" 이라고까지 혹평하고 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11월 26일자)지는 미국 노스웨스턴대 로버트 고든 교수의 연구를 인용, "미국의 90년대 생산성 향상분 가운데 3분의 1은 측정오차고 3분의 1은 정보산업 이외 분야에서 창출된 것이며 3분의 1만이 정보산업의 기여분" 이라며 "장기호황에 대한 정보산업의 기여분이 부풀려졌다" 고 꼬집었다.

신경제이론이 한국경제에 주는 시사점은 적지 않다. 무엇보다 지식.정보산업이 21세기 세계경제를 이끌어갈 주인공인 만큼 이 분야에 대한 투자.지원이 시급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성공적인 구조조정으로 노동시장을 경쟁구조로 바꿀 경우 저실업률.고성장이 가능하다는 점도 되새겨야 할 대목이라고 중앙대 허교수는 지적했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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