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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대표 ‘뉴 민주당’ 독트린 이틀 만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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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대표는 3일 오전 9시 김해행 비행기를 탔다. 이번에 당선된 김영환·이찬열·정범구 의원과 이미경 사무총장, 강기정 대표 비서실장 등 5명의 의원을 이끌고서다. 행선지는 봉하마을이었다. 정 대표 일행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에 참배한 뒤 권양숙 여사를 만났다. 2일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 참배와 4일 동교동의 이희호 여사 예방 사이에 마련한 일정이었다. 우상호 대변인은 “두 전직 대통령 서거 뒤 치러진 첫 선거에서 승리해 당선증을 영전에 바치고 싶다는 정 대표의 뜻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3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찾은 정세균 대표(가운데)와 김영환(왼쪽)·정범구(오른쪽)의원. [김해=뉴시스]


그러나 눈을 국회로 돌리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정 대표 일행이 봉하마을로 달려가는 시간 국회 본회의장에선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었다. 이는 정 대표와 동행한 3명의 당선자가 맞는 두 번째 본회의이기도 했다. 정 대표는 후배 정치인들에게 의정활동에 앞서 국회 밖 행보의 ‘중요성’을 가르친 셈이다. 지난 7월 의원직 사직서를 국회의장실에 던진 정 대표 입장에선 거리낄 게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당선자들은 다른 처지다.

국회 입성을 위해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 동안 천당과 지옥을 오가며 치른 산고를 이제 막 끝낸 사람들이다. 의욕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정 대표도 이들의 당선을 위해 밤낮없이 뛰었다. 그 며칠 전(지난달 29일)민주당은 의원직 총사퇴 의사를 사실상 철회하고 "원내에서 싸우자”(이강래 원내대표)고 결의하기도 했다. 우 대변인은 “선거 직후에 하려던 일인 데다 권 여사의 일정도 고려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한 4일 오전 10시에 맞춰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가 의원들을 이끌고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인사를 갔다면 민주당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재·보선 뒤 ‘변화’를 앞세운 정 대표의 힘 실린 행보는 앞으로도 기대해봄 직하다. 하지만 여권과의 진검승부에 앞서 상대를 인정하고 최소한의 예우는 갖춰주는 게 승부사의 자세가 아닐까 싶다.

임장혁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