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에 '버추얼 CEO' 바람 …프리랜서로 틈틈이 경영자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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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중독자들이 널려있는 실리콘밸리에 요즘 '버추얼 CEO(최고 경영자)' 란 신종 직업이 뜨고 있다. 버추얼 CEO란 일종의 프리랜서 경영자. 틈틈이 CEO로 일하며 자신의 노하우를 경영에 반영하면서도 남는 시간엔 자기 생활에 열중한다.

버추얼 CEO는 최근 정보통신분야의 전직 CEO들이 현장에서 쌓은 경험과 지식을 신생 기업들에게 제공하면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들은 일반적인 실래콘밸리의 CEO들처럼 주 7일, 하루 24시간 일에만 얽매이지 않는다.

랜디 코미사르(44)는 버추얼 CEO의 선구자다. 애플 컴퓨터의 자회사인 클라리스의 CEO를 맡았던 그는 지난 95년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하버드 법대를 졸업한 엘리트가 최고 지위인 CEO를 포기하려 하자 주위에서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는 이에대해 "사생활이란 전혀 없이 일에 대한 압박감이 극에 달하는 CEO를 그만 두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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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자리를 떠난 그를 관련업계가 가만 놔두지 않았다. 인터넷 방송 회사인 웹TV가 CEO로 스카웃하겠다는 제의를 해왔다. 코미사르는 임시직으로 회사 경영을 돕는 것은 응낙하겠다고 했다. 처음으로 '버추얼 CEO' 라는 자리가 생긴 것. 이후 코미사르는 필립스와 소니등이 만든 티보 등 많은 기업의 자문을 맡고 있다. 간단한 자문만이 아니다. 경영 전략을 세우고 자본을 끌어 들이며 장기 마케팅 기획까지 짠다. 대부분 실리콘밸리 경영자들은 "5년만 열심히 일하면 회사를 비싼 값에 팔거나 기업 공개로 떼돈을 벌 것" 이라며 스스로를 다독거린다.

하지만 코미사르는 "결국 남는 것은 이혼과 건강악화밖에는 없다" 고 말한다. 그는 "사생활을 담보로 일중독에 걸린 사람들을 보면 불쌍하다" 며 "버추얼 CEO는 개인적 성취감도 높고 삶도 즐길 수 있어 곧 인기 직종이 될 것" 이라고 밝혔다.

인터넷 상거래 업체의 판매 촉진을 돕는 IQ커머스의 버추얼 CEO 레슬리 래담도 이 신생 직종의 애찬론자. 그녀는 "여러 회사와 일을 하다보니 다양한 경험도 쌓고 회사경영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며 "뛰어난 재능을 지닌 경영자들이 차후 변화할 모습이 바로 버추얼 CEO" 라고 말했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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