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넘기는 선거법 협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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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선거법 협상은 27일에도 원점을 맴돌았다.

우선 '도농(都農)복합 선거구제' 확정을 놓고 국민회의와 자민련간의 의견조율부터 실패했다.

한나라당은 2여(與)갈등을 즐기며 시간을 끌었다.

◇ 자민련의 저항〓이날 오전 간부회의에선 복합 선거구제 도입을 망설이는 국민회의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

참석자들은 "중선거구제에서 한걸음 양보해 '복합' 을 제시했는데 이마저 안되면 아예 현행 선거구제로 가자" 는 강경 발언들이 줄을 이었다.

이양희(李良熙)대변인은 "오늘 회의는 3차대전 발발 직전의 분위기였다" 고 전했다.

회의 도중 김현욱(金顯煜)사무총장은 국민회의 한화갑(韓和甲)사무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민회의가 복합 선거구제로 당론을 변경했는지를 확인했다.

"당론 변경은 유보하고, 확대 간부회의에서 당 3역에게 맡기기로 했다" 는 韓총장의 말을 들은 金총장은 "그럴 수 있느냐" 고 버럭 화를 낸 뒤 전화를 끊었다.

金총장의 보고를 들은 박태준(朴泰俊)총재의 얼굴은 굳어졌다.

잠시 뒤 朴총재는 "복합 선거구제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 이라고 전제하고, "의원 정수도 현재의 2백99명에서 2백70명으로 줄여야 한다" 고 못박았다.

朴총재는 "내가 직접 국민회의 대표들과 만나 담판을 짓겠다" 고 말했다.

◇ 주저하는 국민회의〓국민회의 확대 간부회의는 자민련이 요구하는 복합 선거구제로 당론을 변경하는 문제를 논의했으나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오히려 기존 중선거구제 당론을 유지하라는 주장이 거세게 제기돼 협상 대표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조세형(趙世衡)상임고문은 "선거법을 잘못 처리할 경우 4.13총선 후 땅을 치고 통탄해도 소용없을 것" 이라며 중선거구제 관철을 요구했다.

이상수(李相洙)의원은 "복합 선거구제는 국민에게 정략적 발상으로 비칠 가능성이 있으며, 한나라당이 반대할 경우 물리적 충돌 가능성도 있다" 고 주장했다.

◇ 해넘기는 선거법 협상〓국민회의 이만섭(李萬燮)총재권한대행과 자민련 박태준 총재 및 양당 3역은 이날 낮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약 2시간30분 동안 '도농 복합 선거구제' 도입을 놓고 격론을 벌였다.

문 밖에선 "연합공천이 돼도 공동여당이 한나라당에 진다" "현행 선거구제로 가자는 제안을 누가 받느냐" 는 등 고성이 흘러나왔다.

박상천(朴相千)총무는 "선거법 개정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 는 자민련측의 압박에 "할 수만 있으면 하지 내가 왜 안하겠느냐" 고 소리를 질렀다.

朴총무는 "표결하려면 작전을 잘 짜야지, 아무 준비도 없이 하자는 것인가" 라고 역공을 퍼부었다.

국민회의 이영일(李榮一)대변인은 "자민련은 복합 선거구제를 강력히 제의했고, 국민회의는 깊이 검토하기로 했다" 고 말해 협상이 결렬됐음을 시사했다.

李대변인은 "선거법을 연내에 처리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고 말했으나 무게가 실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민련 이양희 대변인은 "양당간 힘겨루기가 계속될 것" 이라고 밝혀 선거법 연내 처리 전망을 더욱 어둡게 했다.

이상렬.김정하 기자 lees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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